문화토크-한국적 볼거리를 찾아

입력 2002-01-18 14:08:00

지난해 말 이탈리아 로마 시내를 걷다가 지나가던 청년에게 기념사진 한장을 부탁한 적이 있다. 친절하게 셔터를 눌러 준 청년은 기자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반색을 하며 악수까지 청하더니 월드컵 얘기를 꺼냈다.그리고는 꼭 한국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때 대구 수성구 내환동에 지은 월드컵 경기장의 위용이 떠오르면서 마음 한켠이 뿌듯해졌지만, 이내 걱정이 앞섰다. 이 사람들이 대구에 오면 무엇을 보고 갈까.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의 보고인 로마에 비해 대구는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괴물같은 아파트 단지 밖에 눈에 띄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러나 역사와 문화가 다른 그네들 눈에는 대구에서도 볼 것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에게는 식상한 것들일지 몰라도 서양인들의 입장에서는 진기한 문화유적이 많다.

산이 흔하지 않은 유럽사람들의 눈에는 팔공산 하나만으로도 경탄의 대상이다.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과 석탑 등 숱한 불교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한국적인 볼거리들인가.

우리는 세계 유일의 무속박물관인 건들바우박물관조차 하찮게 여겨 문을 닫게 만들었다. 외국인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다. 대구 인근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지석묘들도 공사에 방해를 주는 하찮은 바윗돌이나 정원석쯤으로만 여겨왔다.

잘만 보존해 가꾸면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손색이 없는 고대 유적들이다. 고인돌 공원이나 청동기시대 마을이라도 조성해 뒀다면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볼거리가 될 까.

멀리갈 것도 없이 월드컵 경기장에서 가까운 영남대 민속원이나 경북대 박물관 정원만 찾게해도 뜻깊은 문화유산답사 코스가 된다. 한국의 슬기로운 전통가옥과 천년의 역사를 지닌 석탑과 부도를 보고 문화적 안목이 있는 외국인이라면 누가 놀라지 않을까.

문제는 그것들을 보여 줄 마인드와 준비가 없는 것이다. 대구에 온 외국인들이 하룻밤이라도 더 머물다 가도록 하기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건물만 번드르르하게 짓는게 능사일까. 축구만 보고 휑하니 떠나버린다면 그게다 무슨 소용인가. 시간이 없다. 이제 모두가 나서야 한다.

조향래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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