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상품 문화(4)-스위스 취리히 섹세로이텐

입력 2002-01-16 14:02:00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해마다 열리는 오랜 민속축제 '섹세로이텐'(Sechs elauten). '여섯시에 울리는 종소리'란 뜻의 이 섹세로이텐의 개막 시기는 4월 셋째 주말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축제는 일요일 오후 2시 전통의상을 입고 꽃다발을 든 어린이들의 가장행렬에서 시작된다. 이때면 한글학교 학생들인 우리 교포 어린이 40여명도 한복차림으로 반호프 거리의 행렬에 동참한다. 취리히 중심가로 행진하는 어린이들의 대열을 이끄는 것은 솜으로 만든 커다란 눈사람인 '보오그'.

섹세로이텐 축제에서만 등장하는 이 특이한 형상의 보오그는 어린이들의 행진이 끝나면서 취리히 호숫가 벨뷰 광장의 넓은 잔디밭에 마련된 '섹세로이텐프라츠'에 옮겨진다.

월요일 오후부터는 25개의 취리히 길드(중세 유럽의 직업별 협동조합) 회원들이 저마다 독특한 전통의상을 하고 형형색색의 깃발로 장식된 시내를 행진하는데 악대를 동반한 기마행렬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직업을 상징하는 차림새로 마차를 타고 행진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모든 행렬의 최종 목적지는 섹세로이텐프라츠이다. 그곳에는 겨울의 상징인 눈사람 인형 '보오그'가 자신에게 닥칠 최후의 시련을 기다리고 섰기 때문이다.

'보오그'의 기원은 오랜 민속에서 유래한다. 종교개혁 이전 도시의 어린 소년들은 봄이 시작될 무렵이면 짚단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태우곤 했다. 우리의 달집 태우기를 연상시키는 이같은 풍습이 후일 길드의 지원을 받아 보다 격식을 갖춘 축제형태로 발전했고 결국 '섹세로이텐'으로 통합된 것.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 사원인 그로스뮌스터의 종소리가 정확히 오후 6시를 알리면 축제 참가자들은 보오그를 올려놓은 거대한 짚단에 불을 붙이고 말을 탄 길드 회원들이 전래의 사냥노래인 '섹세로이텐 행진곡'에 맞춰 그 주위를 빙빙 돈다.

시 정부 조경 관서에서 직접 제작한 3~4m 크기의 보오그에는 수십개의 화약이 들어있어 불이 붙으면 요란한 폭음을 내며 터지게 된다. 취리히 사람들은 이 '보오그의 최후'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빨리 보고싶어 한다. 그만큼 봄이 일찍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섹세로이텐은 취리히의 공식적인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축제의 열기가 더해가면서 취리히 중심가의 거리와 광장에는 축제를 보러온 국내외 관광객들로 대만원을 이룬다. 유럽의 각 TV 방송사들도 축제의 가장 매혹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저마다 분주한 움직임을 보인다.

보오그가 최후를 마치고 도시에 어둠 살이 내리면서 섹세로이텐 축제도 막바지에 이른다. 각 길드의 회원들은 제각각 만찬을 가진후 여흥의 시간을 즐기는데 무리를 지어 다른 조합 건물을 방문하거나 시사 또는 지역 현안을 풍자하는 만담 경연을 벌이기도 한다.

일반 시민들과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식당이나 야외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거나 화려한 제등행렬을 구경하면서 섹세로이텐 축제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랜다. 관광객들은 기왕 스위스를 찾은 걸음에 융프라우.아이거 등 알프스산 관광을 빼놓을 수가 없다. 축제가 엄청난 알프스산 관광 특수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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