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市.道로 가는길-(3)전통산업의 활로 되찾기

입력 2002-01-15 14:20:00

지난해 싱가포르, 이스라엘이 건국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지만 우리나라는 플러스 성장을 했다. 세계 경제학자들은 IT(정보기술) 산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들 나라들이 미국 IT경기 침체로 주저앉은 것과는 달리 우리는 IT와 자동차.철강.화학 등 굴뚝산업이 병존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IT, BT(생명기술), 나노(극세기술)산업으로 대표되는 첨단산업이 아무리 대세라고는 해도 전통산업이 또 다른 축을 형성하지 않는 한 국가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역 경제도 마찬가지. 대구시나 경북도가 첨단산업 육성정책을 계획.추진하고 있지만 전통산업이 죽을 쑤고 있기에 지역민들의 체감 경기는 더욱 추위를 탄다는 것이다. 섬유.양산.안경테.공예 등 전통산업이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지역 경제는 희망이 안보인다는 것을 대변해주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 이들 산업의 현황은 어떤가. 한마디로 앞이 안보인다. 기술에서는 선진국에 밀리고 가격에서는 후발 개발도상국들에 치인다. 지역 주력상품인 폴리에스테르 직물의 경우 야드당 1달러 이하인 수출품이 대부분이다. 양산의 경우 수출시장에서는 물론이고 연간 3천만개에 달하는 내수시장도 아예 중국산이 점령해버렸다.

지역특화산업으로 지정돼 있는 자전거부품산업의 경우 시장을 송두리째 내준 채 특화산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우리 제품의 부가가치가 낮다보니 덤핑.밀어내기식 수출과 국내 업체들끼리의 제살깎기식 판매로 만신창이 상태다.

다행히 섬유나 안경테의 경우 정부.지방자치단체.업계 공동의 탈출구 모색 작업이 진행중이다. 산학협동과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기존 경영 방식에만 답습하는 업체들에 비해 상당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업체들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전통산업도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경영성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지만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어 지역 전통산업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이를 대표한다.

2003년까지 5년간 총 6천8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돼 대구.경북 섬유산업을 고도화시키는 야심찬 프로젝트. 2001년말 현재 64%의 진척률을 보이고 있다. 일부 중.소형 업체를 중심으로 신제품개발센터나 니트시제품센터, 염색디자인실용화센터, 한국패션센터 등을 통해 제공된 기술이나 정보를 이용해 신제품을 만들고 시장을 개척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당장 수출실적이 증가하거나 업계 전체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데다 섬유업 불황이 호전될 기미를 안보이기 때문에 업계에 도움이 안된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하지만 2003년 이후의 지원 문제만 해결되면 분명 지역 섬유산업 구조 개선에 도움이 되는 사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업계 공동의 대응노력도 적극 모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안경테산업. 지난해 11월 대구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구광학박람회디옵스 'DIOPS'가 이를 잘 말해준다. 기업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 자신의 바이어를 전시회장으로 불러 들여 큰 성공을 거뒀다. 다른 업종에서는 나의 바이어를 뺏길까봐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현상이 안경업계에선 벌어진 것이다.

물론 일부 업체들에 국한돼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현재 지역의 안경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티타늄 소재를 바탕으로 한 신제품 개발에 내남없이 나서고 있다. 김상연 대구보건대 안경학과교수는 "고급 소재인 티타늄을 국산화해 안경테를 생산하면 국내 업체들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장담했다.

티타늄 국산화 작업은 현재 산학연 협동을 통해 결실단계에 있다. 대구시와 대구보건대, 국내 최고 티타늄 가공업체인 KPC(대구시 동구 각산동)가 공동으로 추진중인데 가격이 싼 원부자재가 공급 되면 기업들은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어 티타늄 안경테 개발 사업은 추진력을 얻게 될 전망.

더욱 고무적인 것은 안경테에 사용할 목적으로 추진된 티타늄 국산화 노력이 골프채를 비롯한 스포츠용품이나 항공용 소재, 인공관절 등의 의료용품으로까지 다양화 되고 있다는 사실. 지역 특화산업인 양산은 중국산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연간 양산 유통량은 3천만개 정도. 이중 중국산은 2천만개를 차지한다. 가격은 국산의 60~70% 수준.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법 이름을 내놓고 있는 업체들도 자체 생산 물량보다는 국내 영세업체 및 중국업체로부터 OEM으로 양산을 시장에 내놓는다.

국내 업체들은 중국의 저가품 공세에 맞서 보호관세(SAFE GUARD) 발동을 정부에 건의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 대응보다는 기술개발을 통한 원가절감과 품질개발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상훈 대구시 중소기업과장은 "일부 업체이긴 하지만 자동재단기 등 기술개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런 업체들이 없으면 양산업은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응용기술개발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업체들도 있다.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주)보우(대표 김복룡). 이 업체는 원단을 매끄럽게 해주는 펠트 기술 하나로 세계 최고 기업 반열에 올라 있다가 최근에는 이 기술을 응용한 폐수정화장치 개발로 또다른 성장을 꾀하고 있다. 염색공장 등에서 나오는 폐수를 펠트를 통해 여과시키면 찌꺼기가 일반 여과 때보다 절반 이상 감소한다.

김복룡 사장은 "끊임없는 연구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있는 벤처기업 '삼랑ATI(대표 최민석)'는 기술개발에만 매달린 끝에 빛을 보게 된 사례에 속한다. 농촌에서 잡초를 억제하기 위해 비닐을 덮개로 사용하는데 이는 잡초 제거 효과는 다소 있는 반면 필연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토양을 산성화한다.

삼랑ATI의 부직포는 비닐의 이런 단점을 완전 해결한 상품. 매년 두배 이상의 매출증가를 기록할 정도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최 사장은 기술을 응용하면 섬유로도 못할 게 없다며 섬유산업의 전망은 무궁무진하다고 자신한다.

박의병 대구상의 기획조사부장은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전통산업도 분명 대안이 있다"며 "기술개발과 경영자의 의욕이 결합하면 지역 경제도 희망을 가질만 하다"고 말했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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