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외길 '유도계 산증인'

입력 2002-01-15 14:58:00

"철모르고 유도계에 발을 디뎠는데 훌쩍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영욕의 순간을 함께 지켜보았지만 후회없는 길이었습니다".

1955년 고교졸업후 46년간 유도계에서 몸담은 이양모(65) 대구유도회 사무국장이 15일 퇴임했다. 이씨는 대구.경북 유도의 산증인이었다.

지난 55년 경북유도회(1981년 대구, 경북으로 분리)출범과 함께 대구시 중구 동인동 무덕관(현 대구시청사부지)에서 출발해 북구 칠성동 경북경찰기동대 건물의 곁방살이를 거쳐 1980년부터 북구 산격동의 현 대구시유도회관시대까지 유도회의 안방살림에서 그의'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그가 모신 회장만도 15명이나 된다."60, 70년대는 그야말로 신났습니다. 타.시도에서 대구팀과 붙지 않으려고 아우성이었지요. 연간 신입회원만 1천명이 넘을 정도로 유도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60년대 중반부터 전국체전에서 7년 연속 우승하고 대구.남산.산격초교, 중앙.계성중, 영신.계성고로 이어지는 학생유도는 천하무적이었다.

또 80년대 들어서는 LA올림픽과 88서울 올림픽때 남자 7개체급 가운데 4개체급 국가대표가 모두 대구출신 선수로 구성되는 대규유도의 전성시대를 지켜봤다.

그러나 아픈 기억도 없지 않다. 1970년대 초반 원로유도인의 불화로 4년간 유도회 임원들이 모두 해임되고 업무도 체육회가 관장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선수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유도 6단까지 오른 이씨는 "과거에는 유도인으로 불리는 것을 큰 영예로 알았는데 요즘 후배들은 '예'와 '도'보다는 기술만을 중시하는 풍조가 아쉽다"는 일침도 놓았다.

이씨는"일선에서 물러나더라도 후배들을 위한 일을 찾아보겠다"는 소박한 다짐과 함께 정든 유도회관을 떠났다.

이춘수기자 zap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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