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정치 혐오를 극복하자

입력 2002-01-11 00:00:00

2002년 새해에도 정치개혁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마침 오는 12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예정되어 있어서 이번 선거가 정치개혁의 신호탄이 될지 모른다는 희망섞인 관측을 해보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민선 민간정부가 들어선지도 벌써 10년,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정치개혁은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정치개혁에 대한 불같은 열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정치란 할 일 없는 건달이나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격이상자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이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또 일상생활에서 '누구 누구가 정치적'이라고 이야기할 때도 결코 긍정적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즉 정치적이라고 지목되는 인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탐하고 힘있는 자에 빌붙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일반화되어 있는 정치 혐오감은 정치인들에게 기인하는 몫이 크다. 정치인들의 부패는 이미 일상화, 보편화되어 있어서 깨끗한 정치인을 찾는다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대형 부패사건치고 정치인들이 연루되지 않은 경우가 없으니,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지 않는 사회집단으로 정치인을 꼽는다고 해서 억울해야 할 정치인들도 아마 없을 것 같다.그러나 우리 사회가 열망하는 정치개혁은 정치를 혐오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아니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가질수록 정치개혁은 더욱더 멀어질 것이라는 역설이 성립할 것이다. 정치는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활동이다. 굳이 플라톤과 같은 성인들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치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지난 번 국회에서 결정된 건강보험 1년반 통합유예는 분명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이야말로 다름아닌 정치(행위)였다. 그리고 종합적인 성격의 일간신문마다 매일처럼 제1면부터 장장 4, 5면에 걸쳐 정치기사를 싣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정치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내려질 수 있다. 정치를 좀더 쉽게 정의해 본다면, 그것은 사회적 의사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권력이라는 요소가 개입하고 있다. 좀더 가치판단을 부여해서 규정한다면, 정치란 사회적 의사결정을 통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질서(혹은 사회체제)를 만들어가는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파슨즈(T Parsons)같은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정치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정치에 많은 국민들이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면, 사회적 의사결정이 제대로 작성될 리가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순간, 수준 이하의 정치인들이 공공의 이익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온갖 사회적 규칙을 만들어낼 것이다.

더구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지난번 의약분업사태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문제해결은 더딜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그 비용은 일반 국민들 말고 누가 부담하겠는가?

때문에 정치를 혐오만 할 것이 아니라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치현상에 대한 냉철한 관심을 가질 때만이 우리가 그렇게도 열망하는 정치개혁은 실현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벗어던질 때,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능력있는 인물들이 용기있게 정치에 나서서 복된 사회를 만드는 데 헌신해 나갈 것이다.

백승대(영남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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