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남구 대명9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정인기(50)씨는 대구시내 노인복지시 설을 훤히 꿰뚫고 있다. 시설을 다니며 노인들의 머리를 무료로 깎아드린 지 벌써 25년째.
정씨 혼자 시작했던 '이발봉사'는 동료 이발사 14명이 참여하는 '봉사단'으로 바 뀌었다. 자원봉사가 '새끼를 친' 셈. 정씨가 창설역할을 맡은 이발봉사대는 '성로 원' 등 대구시내 노인복지시설 7곳을 순회하며 매달 이발봉사를 하고 있다.
"이제 자원봉사를 그만둘래도 발을 뺄 수 없어요. 할아버지는 물론 할머니들까지 이발 봉사대를 기다려요. 아파도 가야 됩니다. 이젠 봉사대원들도 봉사활동 당일 참석을 못하면 얼굴을 못 든답니다" 정씨는 자원봉사도 몸에 배면 즐거운 일이 된 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자원봉사 문화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지만 그나마 가장 활성화된 부분은 '노인들에 대한 자원봉사'다. 전통적인 효사상이 아직도 '굳건히' 살아있 는 우리 정서가 반영된 탓이다.
실제로 대구시사회복지관협회가 지난 91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동안 대구시내 25 개 사회복지관의 자원봉사자 활동을 집계한 결과, 노인복지분야에 종사한 자원봉 사자는 모두 6만1천458명으로 전체 자원봉사자 15만3천59명의 40%를 차지했다. 노 인들에 대한 봉사에 나서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노인들에 대한 '자원봉사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다. 평균 수명 연장에다 사회에서의 퇴출연령까지 50대로 내려가면서 '사회적 노인인구'가 가파르게 증가, 행정기관 또는 사설단체들이 앞다퉈 노인복지관을 만들고 노인복지프로그램을 개 발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대구 북구청이 운영하는 강북노인복지회관. 이 곳은 자원봉사자들이 없으면 운영 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회관이 운영하는 경로식당의 경우, 개관전 평균 이용인원을 150여명으로 추산 했지만 요즘 많이 몰릴 때는 1천400명을 훌쩍 넘긴다. 식사 후 설거지만해도 수십 명이 투입돼 저녁때까지 해야 한다.
구청이 운영하는 기관이지만 설거지 인력까지 예산지원이 되진 않는다. 자원봉사 자가 꼭 필요한 이유다.
개관이후부터 줄곧 설거지봉사를 하고 있는 북구여성문화대학 총동창회 유순희(53 ·여)회장은 "동창회 기수별로 조를 짜 매 주 10명가량씩 돌아가며 설거지 봉사를 한다"며 "오전 11시부터 설거지를 시작, 오후 4시쯤에야 끝이 나는 강행군이지만 회원들은 사는 보람을 느낀다며 오히려 즐거운 표정"이라고 전했다.
노인복지시설 관계자들은 요즘엔 혼자 찾아오는 자원봉사자가 많다는 점에서 희망 을 건다.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결정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왔던 사람들이 적지 않 았던 예전과 많이 달라진 세태다.
게다가 최근엔 대학생 자원봉사자까지 부쩍 늘고 있다. 자진해서 찾아오는 젊은 학생들은 일을 찾아서 한다는 점에서 말할 수 없이 반가운 손님.
대구시노인종합복지관 박지은(30·여)사회복지사는 "노인종합복지관에만 하루 평 균 6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한다"며 "중풍을 앓고 있는 노인들의 목욕을 시 키고 청소·빨래까지 해야하는 이른바 '거친 자원봉사'까지 묵묵히 해내는 자원봉 사자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튼튼한 울타리안에 있는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