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나무닭의 승리

입력 2002-01-05 15:18:00

옛날 제(齊)나라의 왕 환공(桓公)은 닭싸움을 좋아했다. 어느 날 그는 기성자(紀省子)에게 닭 한 마리를 주면서천하에 제일가는 투계(鬪鷄)로 훈련시켜 보라고 했다. 기성자는 당시 이름난 투계 사육사였다. 10일 지나자 왕은 기성자에게 물었다. "어떤가 그 닭은 투계용으로 훈련이 다 됐는가?" "예, 치고 물어뜯고 쫓고싸우는 훈련은 다 됐으나 늘 눈에 살기가 등등하여 자꾸 적을 찾고 있습니다.

며칠 더 훈련이 필요합니다".그로부터 다시 10일이 지나자, 왕이 또 물었다. "예, 이제 눈에 살기는 사라지고 적을 찾아 헤매지는 않지만 다른 닭에게 신경을 쓰고 있으며 닭을 보면 금방 투지(鬪志)를 보이옵니다. 더 훈련이 필요합니다". 또 10일이 지나서 왕이 묻자 기성자는 대답했다. "역시 안되겠나이다. 다른 닭을 아직도 노려보고 있사옵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닭'

그리고 10여일이 또 지났을 때 왕은 지겹다는 말투로 다시 물어 봤다. 기성자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이제 되었나이다. 모든 닭이 울어대도 전혀 개의치 않고 싸우려 달려들어도 싸우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사옵니다.흡사 나무닭(木鷄)과 같으니 덕을 온전히 갖췄다고 봐야 하겠나이다. 닭이 닭을 알아보옵니다. 다른 닭들은 가까이 왔다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슬슬 도망을 칠겁니다".

과연 그랬다. 환공의 닭이 투계장에 나타나면 다른 닭들은 아예 싸울 생각을 못하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싸우지도않고 가만히 나무닭처럼 서 있기만 해도 이기는 환공의 닭을 보고 사람들은 '목계(木鷄)의 승리'라 했다.

올해는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다. 월드컵 경기와 아세안 게임도 치러야 한다. 정말 국운을 결정짓는 한 해라 하겠다. 우선 나무닭과 같은 재덕(才德)을 겸비한 큰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광역시장, 도지사, 시장, 군수가 되어야 하겠다.

진실로 재능과 경륜과 인품을 고루 갖춘 지도자가 앞장을 서면 국민들은 불치불란(不治不亂)하고 불언자신(不言自信)하며불화이행(不化而行)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회의(Conference), 상식(Common Sense), 타협(Compromise), 합의(Consensus)가 뿌리가 된다. 이 뿌리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재덕(才德) 겸비한 큰 인물

이 뿌리를 잘 알아도 양은 냄비같은 사람, 장물 그릇같은 졸장부, 돈은 많고 명예에 한 맺힌 사람, 마당 발…. 이런 무리들도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요,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자신을 아는 일이라 했다. 그러나 명경(明鏡)과 인경(人鏡)과 서경(書鏡)과 사경(史鏡)과 업경(業鏡)과 심경(心鏡)과 천경(天鏡)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 자신의 사람됨을 금방 알 수 있다. 백성들은 되어야 할 사람과 되어서는 안될 사람을 즉각 알아 차린다.

백성들의 예리한 눈 앞에는 공당의 공천 따위는 허무하기 그지 없는 허상일 뿐이다. 거울에 자신의 무게를 측정해 보고 함량미달의 인사는 제발 허황된 꿈을 접기 바란다.

---대통령·지방선거 주인 돼야

올해는 말의 해다. 용마(龍馬)가 바다에서 치솟아 구름을 뚫고 하늘로 날아 오르는 기상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리라. 그리하여 간디의 망국론(亡國論)을 흥국론으로 바꿔 세워서 두 개의 세계적인 행사를 멋있게 치르도록 전진해야 할 것이다.

원칙없는 정치에서 원칙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정치로, 도덕없는 상업에서 도덕이 늘 스며 있는 상업으로, 노동 없는 부(富)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서 얻는 부로, 인격 없는 교육에서 인격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인간성 없는 과학에서인간성이 숨쉬는 과학으로, 양심 없는 쾌락에서 책임있는 쾌락으로, 희생 없는 종교에서 헌신할 줄 아는 종교로.

창 밖에 동백꽃이 곱게 피어 있다. 나는 늘 한국 사람임이 자랑스럽다.

수필가 김 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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