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천연기념물'

입력 2002-01-04 15:25:00

지난해말로 은퇴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타임지가 선정한 '2001 올해의 인물'이 됐고, 그에 앞서 갤럽과 CNN의 '가장 존경받는 남성' 설문조사에서도 부시 대통령, 파월 국무장관에이어 3위에 올랐었다. 때묻은 정치인이 한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9.11테러로 온국민이 비탄에빠졌을때 인명구조와 혼란수습의 최일선 현장에서 몸으로 부닥치며 지도자의 용기와 판단력을 유감없이 발휘, 국민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8년의 임기를 마치고 평범한 '뉴요커'로 돌아간 지난 1일 미국인들은 그의 퇴임을 못내 아쉬워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존경하고싶은 인물이 누구냐를 설문조사 해보면 어떤 답이 나올까? 우선 정치권부터 존경받는 인물은 전무하다. 대권욕에 눈먼 사람들, 그 뒤를 맹목적으로 좇아가는정치인들의 당파싸움속에 존경의 싹수는 노랗다. 교육계도 마찬가지,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한탄의 소리는 아직도 유효하다. 이 잘못된 교육제도.교육풍토에 "뭬야!"대갈일성할 큰 인물은 없다. 과문(寡聞)인지 모르나 종교계에도 존경심이 절로 우러날만한 성인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이다. 그러고보면 지금 이 땅에 존경받는 인물은 '천연기념물'이라 할만하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최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50대 기업을 발표했는데,1위가 제너럴 일렉트릭(GE), 2위 마이크로 소프트, 3위 IBM, 그리고 일본의 소니와 도요타가 4.6위에 올랐지만 한국은 50위안에 단 한기업도 들지못했다. 5위가 코카콜라, 7위가 노키아(핀란드), 월마트.인텔.씨티그룹이 그 뒤를 이었다. 아시아에서 50위안에 포함된 기업은 일본 세 곳과 싱가포르 한 곳뿐이었다. '존경'이란 평가항목에는 상품의 우수성, 소비자의 신뢰도가 물론 포함되겠지만 특히 기업경영의 원칙과 투명성,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업의 윤리같은 측면이 더욱 강조되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제1의 애국자는 기업인들이다. 돈만지는 장사꾼이 크게 존경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이 땅의 부(富)를 이만큼 키운 것만으로도 소임을 다했다면 할말이 없으니까. 그러나 사회가 국제화되고 경제가 글로벌화한 이 마당의 기업평가 잣대 또한 세계화에 맞출 수밖에 없는 것. 그룹총수가 기업을 다망친 채 떠돌이 신세가 되고, 2세 경영인들이 '왕자의 난'으로 망신을 당하고,그룹 임직원들이 국내외 거래처에 뇌물을 주고 받고 하는 상황들이 계속되는 한 삼성이든 현대든 LG든 세계 50대 존경받는 기업에 끼일 날은 없다. 50대 존경기업에 끼이는 날, '천연기념물'이 될테니까.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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