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 아들 사법시험 합격

입력 2002-01-04 12:38:00

"어려운 가정형편을 내색 한번 않고 공부에만 전념해준 아들 녀석이 고마울 뿐입니다. 공명정대한 법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달 사법시험에서 장남이 합격한 전병구(55·대구시 동구 신암동)씨는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들 재기(27·경북대 4년)씨가 제43회 사법시험에 최종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전씨는 환경미화원으로 쌓인 고단함이 싹 가셨다.

전씨의 직업은 환경미화원. 대구시 서구의 한 청소용역회사에 근무하는 그는 다른 사람들이 곤히 잠든 새벽 2시에 출근, 염색공단을 돌며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5년째 하고 있다. 30kg이 훨씬 넘고, 갖가지 오물로 뒤덤벅인 쓰레기 포대 수십개를 수거해 매립장에 갖다 버리기를 다섯 차례나 반복하는 고된 일을 하고 있다. 일이 끝나는 오후 2시쯤이면 온 몸은 땀에 젖는다.

전씨는 "아들이 합격한 뒤로 힘이 솟구친다"며 "새해 복많이 받아라는 덕담을 들을 때마다 '평생 복을 다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재기씨는 "영하의 매서운 날씨속에서도 온몸이 땀에 젖은 채 녹초가 돼 퇴근하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그만 두시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며 "하루 빨리 시험에 합격하는 게 효도하는 길이란 마음에 공부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2차시험에 두차례나 떨어졌을 때도 아버지는 "실망 하지 말고 다시 한번 도전하라"고 했다.

재기씨는 "이른 새벽 가족들이 깰까봐 살며시 대문을 열고 일터로 나가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다"며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 더욱 공부에 매진해 아버지에게 법복을 입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mohc@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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