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16일. 중국 신장성 카시를 출발해 5시간을 달린 버스가 무스타그 아타의 관문인 카라쿨리 호수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3천500m.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대원들도 분명 같은 증세를 느끼고 있었지만 내색하는 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 하나 때문에 탐사대 일정에 차질을 줄 수 없다는 다짐과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탐사대의 안전을 걱정하던 장병호 대장이 조바심을 냈다.
탐사대원들은 대부분 해발 3천m 이상의 고산 등반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증세가 심한 대원이 나타나면 탐사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낯선 이방인들에게 얼굴을 내미는 것이 쑥스러웠을까. 무즈타그 아타는 연한 구름을 흘리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정상을 내밀어 보여주지 않았다.
장병호 대장이 일정을 수정했다. 이날 카라쿨리 호수에서 버스로 20분을 더 가야 닿는 스바쉬(Shuibashi) 마을까지 가야하지만 대원들의 고소 적응을 위해 호수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유르트를 빌려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하룻밤 고소적응을 한 탐사대는 카라쿨리 호수를 출발, 20분 남짓 버스로 달려 수원지(水原地)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스바쉬 마을에 도착했다.
낙타에 탐사대의 짐을 싣고 베이스캠프까지 가려했지만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악천후에다 대원들의 고소증세를 우려한 대장이 다시 일정을 수정했다. 대원들은 눈과 비를 맞더라도 베이스 캠프까지는 갈 수 있다고 수근거렸지만 이들의 안전이 걱정될 수밖에 없는 장 대장이 어쩔 수 없이 하루 늦더라도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자는 결정을 내렸다.
탐사대는 날씨가 갤 때를 기다리며 잠시 이들의 집안에서 쉴 수 있었다. 3m 가량의 흙벽돌을 쌓아 만든 집, 실내에는 문 없는 출구로 이어진 방 2칸이 전부였다.
한쪽은 거실로 쓰고 다른 한쪽은 침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집안에는 양철로 된 난로를 놓고 이들이 키우는 야크(소과의 가축)의 마른 똥을 주워 연료로 사용했다. 냄새가 심하게 날 법도 하지만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고 충분한 열량을 내어 집안이 훈훈했다.
스바쉬 마을에는 30여가구 120여명의 위구르인들이 살고 있다. 이곳 아이들은 카라쿨리 호수 인근의 큰 마을에 있는 친척집에 머물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학교에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 가운데 10%만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이들의 생활 습관대로 목축을 하고 있다.
탐사대가 2002한국월드컵을 홍보하기 위해 가져간 축구공을 꺼내놓자 탐사대와 멀찌감치 떨어져 신기한 듯 구경하던 어린아이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축구공을 처음 보는 듯했다. 손에 쥐어 줘도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하는지 몰랐다. 대원들이 발로 차고 이리저리 굴리면서 시범을 보이자 이내 서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방을 뛰어다니며 공놀이를 시작했다. 베이스 캠프를 향하는 길은 매우 완만하고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소적응이 덜 돼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대원들은 5시간을 걸어서야 베이스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소적응이 덜 된 탓에 작은 경사의 오르막길에도 헐떡거렸지만 뒤로 처지거나 힘들어하는 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힘겨운 걸음을 떼어놓으며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을 계속했다. 해발 4천400m의 베이스 캠프는 무즈타그 아타의 빙하가 녹아 흐르는 냇가가 가로지르고 위구르족들이 간판 없이 차려놓은 허술한 상점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베이스 캠프를 만드는 대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누구 하나 일을 미루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에 놓인 무스타그 아타의 등반에 설레고 가슴 벅차 했다. 대원들에게 이미 고소증세는 문제될 게 없었다. 산이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고 했던가.
고소증세가 심하게 나타난 이용석(수원대 3년) 대원을 제외한 모든 대원이 캠프 1로 향했다. 베이스 캠프를 올라오던 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급경사였다. 올라 갈수록 높아지는 고도 때문에 걷기보다는 발을 옮겨 놓는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고통스러움이 계속됐다.
캠프 1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하지만 걷고 또 걸어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이 속이 울렁거렸지만 모두들 잘 참아 냈다. 7월 21일 오후3시40분.
베이스 캠프를 출발한 지 6시간이 걸려 드디어 캠프 1에 도착했다. 정상은 아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에 대원들의 얼굴은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다. 대원들은 결코 힘들어하지 않았다. 고소증세로 캠프 1 등반을 포기했던 이용석 대원도 뒤늦게 헤드라이트 하나에 의지해 어둠속을 헤치며 캠프 1에 합류했다.
탐사대는 해발 5천600m 캠프 1까지 등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원들의 의욕은 정상등반에 있었지만 고산 등반 경험이 부족해 그 이상은 무리였다. 지난 7월23일 밤, 등반을 끝낸 대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이번 탐사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슴 트이는 넓은 세계를 경험한 대원들에게 이날 밤은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끈기,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을 경험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배낭을 맡기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다한 대원의 모습도 감동을 주었다.
글=장한형 기자janga@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