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타이타닉호와 DJ호

입력 2002-01-02 00:00:00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2002년 새해에 우리는 올해로 꼭 90주년을 맞는 한 여객선의 역사적인 비극(1912년)을 놓고서 단순한 실존 영화이야기 차원의 흥미를 넘어 소수지도자 그룹의 오만과 준비안된 실수가 애꿎은 다수에게 얼마만큼 큰 비극을 안겨주는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올해는 더욱 그 깨우침이 절실한 해가 될 것 같아서다.

'가라앉지 않는 배'로 선전된 세계최대의 배, 특별히 초빙된 노련한 퇴역 선장, 골라 뽑은 승무원들이 있었음에도 왜 어처구니 없는 비극은 일어났는가.

배가 작아서였을까? 90년전 그 시대 세계최대의 군함보다도 2배나 더 컸으니까 배의 크기는 정답이 못된다.

오히려 가장 큰 배, 가라앉지 않는 배라는 자긍심이 원인이었다.

선장이 노련하지 못해서였을까. 그러나 스미스 선장은 퇴역선장중에 특별히 첫항해 행사를 위해 초빙된 '프로'였다.

적어도 인근을 항해하던 초라하고 조그만 캘리포니언호의 신참 선장조차도 엔진을 끄고 조심스레 조류를 타고 있던 '빙산지역'이었음에도 22노트의 속도를 명령한 자아도취적 자만을 뺀다면 9단급 항해술 경륜 그 자체는 침몰의 핵심원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승무원들의 무능탓이었을까.기록에 의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내로라고 자부했기에 무선사는 인근 보잘 것 없는 작은배로부터 온 빙산경고를 묵살 하는 대신 승객들의 여행축하전보나 주식 중매.통지 같은 전보를 전하는 일에 더 정신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또하나, 놀랍게도 돈많은 선주(船主)들은 1만t급 이상 선박에는 16척의 구명정을 달아야 한다는 상무성(商務省)의 선박안전규정 취지를 무시했다.

구명정을 많이 달 경우 테니스장과 수영장이 좁아지고 가라앉지 않는 배에 구명정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만과 비용을 아끼려는 물욕으로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최소기준 숫자만 채웠던 것이다. 그 결과는 구명정 부족으로 3분의 1의 승객밖에 살려내지 못했다.

지도자의 오만과 독선, 법을 교묘히 갖고 노는 정치적인 잔재주, 그리고 속물적인 물욕이 얽히면서 역사적 비극이 만들어진 셈이다.

5년전 IMF위기 직전 국민소득 1만달러, OECD 가입국으로 떠오르는 용, 거대한 한국호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지도자의 자만과 독선적 오판, 참모들의 부패는 숱한 사전 경고를 무시했고 그 결과 침몰했다.

그리고 다시 지난 4년간 DJ라는 새롭게 초빙된 선장이 이끄는 개혁한국호는 가까스로 인양돼 2002년 남은 1년의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다.

지난 4년 DJ호를 타고오면서 4천만명의 승객들은 과연 멋진 크루즈여행을 즐겼던가. 아니면 IMF라는 빙산의 바다에 처박아 넣었던 전임 선장과 빼닮은 선장이라는 실망속에 또다른 빙산을 불안해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의 선장은 재임시 뭔가 보여주려는 햇볕정책과 정권재창출, 퇴임후의 정치적 안전보험 같은 것들에 집착해 22노트의 무모한 밀어붙이기식의 속도로 욕심내고 있지는 않은지.

가신과 실세들은 민초들의 무언의 경고메시지를 겁없이 묵살하면서 파티장의 '게이트'고객들과 형 아우끼리 파이를 나눠 먹거나 패거리 대선놀음에 정신이 팔려 빙산을 못본체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승객들의 눈에는 DJ호 브리지에 타고 있는 지도그룹들의 자만과 실수와 오판이 너무 자주 뚜렷이 보인다.

그래서 자꾸만 마지막 남은 항해도 불안스럽고 불만스럽다. 또한번 침몰한다면 5년전 수많은 승객이 실직, 파산 퇴출됐어도 정치꾼과 게이트머니로 무장한 그룹은 고스란히 살아남았듯이 다음에도 그들이 가장 먼저 구명정을 탈 것이다.

타이타닉에서 구명정으로 살아남은 승객중 1등석 승객이 65% , 2등석 승객 42%, 3등석 승객은 고작 25%였듯이.

이제 마지막 항해를 앞두고 DJ호의 선장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단호히 결정해야 한다.

부디 내 임기중에는 끝까지 22노트로 달려서 무리하게 역사에 남겠다는 욕심은 버릴수록 좋을 것이고 김정일씨가 안와도 한국호는 간다는 마음비우기도 좋을 것이다. 대선에서 내 가신들이 재집권 못해도, 아태재단에 퇴임보금자리가 없어도 좋다는 결단도 권해볼만하다. 마음이 그렇게 비워질때 비로소 깊은 바닷속의 빙산이 또렷이 보일 것이다.

9단급 항해 경륜만을 믿고 22노트의 자만으로 몰락했던 타이타닉호의 선장처럼 마음에 과욕과 독선이 끼어 빙산이 보이지 않게 되면 또한번 한국호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새해 그 누구보다도 DJ호 선장의 혜안이 빙산을 잘 내다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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