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중국

입력 2001-12-31 14:03:00

우오후창룽 짠치라이러(臥虎藏龍 站起來了)!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 야저우저우깐(亞洲週刊)의 지난해 4월2, 8일자에는 2001년 제73회 아카데미상의 외국어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중국영화 '우오후창룽(臥虎藏龍)'에 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감독 리안(李安)과 출연진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과 함께.

'우오후창룽 짠치라이러'는 글자 그대로 '누워있던 호랑이, 숨어있던 용이 일어났다'라는 뜻. 또한 '숨은 인재'라는 의미도 있다. 은둔자처럼 세상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던 '중국'이라는 존재가 드디어 어깨를 떨치고 일어섰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최근 국제사회에서 눈부시게 급부상하는 중국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들어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내로라는 경제강국의 대기업들이 대규모 해고사태를 겪고 있고, 이들 나라의 기침에 지구촌이 동반불황을 앓고있는 판에 유독 연평균 7~8%대의 고도성장을 자랑하는 중국.

불과 이십여년전만 해도 덩치만 큰 종이호랑이에 비견됐던 중국이 21세기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그 방향은 세계화.국제화.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와 WTO 가입에 따라 '루쓰(入世: 세계화 진입)'라는 단어는 현 중국사회의 키 워드로 부각되고 있다.

서울올림픽 이후 아시아에서는 20년만에 따낸 베이징 올림픽 개최소식은 광대무변의 대륙, 13억의 인민들을 환희로 들썩이게 했다. 큰 덩치와 달리 일종의 열등감에 시달려오던 중국인들은 비로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됐다. 요즘 중국은 먼지바람일던 삭막한 거리에 꽃과 나무를 심고, 문 없는 화장실로 악명높은 화장실문화도 3년내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노라고 장담하고 있다. 베이징의 구질구질한 얼굴을 싹 바꾸겠노라며 자신만만해 한다.

그위에 지난 연말의 큰 선물, 143번째 WTO(세계무역기구) 정식 회원국 가입은 중국을 누운 호랑이가 아닌 비호(飛虎)로 탈바꿈시킬 태세다. WTO 가입은 중국의 질주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됐다. 물론 일각에선 "WTO는 중국을 잡아먹는 늑대가 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되지만 전반적 형세는 희망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 20년간 연평균 9.8%의 고도성장, 앞으로 15~20년동안도 연평균 8%의 성장지속. 세계 경제계가 전망하는 중국경제의 성적표다. 무궁무진한 싼 노동력 덕분에 가격경쟁력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 요즘은 기술력도 급속하게 향상돼 싸구려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세계의 가전공장으로 뛰어올랐다. 지난해는 일본을 제치고 생산부문 세계1위, 미국을 제치고 소비부문 2위를 차지했다. 정보산업분야에서도 세계10대 정보산업국 대열에 올라섰다. 중국을 만만히 봤던 우리나라도 이미 섬유.신발 등 주요산업에서 중국에 추월당했거나 맹추격받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대륙과 타이완, 홍콩, 마카오 등 양안의 4개 중화권을 하나로 묶는 자유무역구 설치방안을 모색중이다. 현실화되면 중화권의 경제교류와 협력은 한층 가속화되고 한국이나 일본 등 인접국의 경제적 입지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중국은 경제분야서만 세계화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다. 내부적으로도 엄청난 변혁의 와중에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일당(一黨)체제인 중국공산당의 변신. 6천400여만명의 당원으로 13억의 중국을 이끄는 팔순 노옹(老翁) 중국공산당은 지난해 여름 폭탄선언을 터뜨렸다. 장쩌민(江澤民) 총서기가 종전의 계급투쟁 강령을 버리고 이른바 '싼거따이뺘오(三個代表)'사상으로 바꿀 것을 천명한것. 즉 '중국공산당은 중국선진생산력의 발전요구, 중국선진문화의 전진방향, 중국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따라 과거같으면 상상도 못할 이른바 홍색자본가(紅色資本家: 자본가이자 공산당원)의 대량탄생도 가시화되고 있다. 조수성 계명대 교수(중국학)는 "문화대혁명때 자본주의 주구(走狗)로 핍박당했던 자본가들이 중국경제를 좌지우지하게되자 이들 자본가들의 정치적 소외와 불만을 해소시키고 사회안정도 꾀할 목적으로 공산당이 먼저 그들을 껴안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모든 인민, 모든 계급에 공산당을 개방한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엔 중국지도부의 세대교체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장(江)주석이 최근 "난 아직 건강해"라며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기색을 보이긴하지만 내년 제16기 전국대표대회에서 50대의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이 총서기(주석)직을 물려받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성급(省級) 지도부도 40, 50대의 젊은층으로 대거 교체돼 어느때보다 '연소화(年少化)' 현상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70, 80대 노옹들로 가득했던 과거 중국정치계에서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한마디로 중국은 경직된 사회주의 체질에서 다양성과 역동성, 유연성을 과시하는 자본주의 체질로 급변하고 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선언에 이은 제2차 개혁개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덩의 개혁개방이 경제분야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은 경제뿐 아니라 중국인민의 생활전반에 걸친 점이 다르다.

중국의 상승지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인터넷이 보편화되는 2007년엔 인터넷상의 주요 언어가 영어에서 중국어로 세력판도가 뒤바뀔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97년 베이징의 고궁인 즈진청(紫禁城) 야외무대에 올려 전세계의 시선을 받았던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의 중국판 오페라 '투란도트'는 세계순회공연을 통해 중국문화의 전령사로서 갈채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새해부터 중국은 나라의 문을 활짝 연다. 출입국 개혁조치 6개항에 따라 자국민의 해외여행 규제를 풀고, 내년부터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게된다. 21세기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려는 중국의 야심찬 복안이다.

중국은 올해 또하나의 새로운 매머드 프로젝트로 세상을 놀래킬 작정이다. 1500년전 수(隋) 양제(楊帝)때 만든 남북 대운하를 활용해 1150km의 대운하를 건설, 남쪽 양자강의 물을 메마른 북쪽의 황하유역으로 옮기는 남수북조(南水北調) 대역사. 중국인다운 발상이 돋보이는 이 공사는 양자강 댐공사인 삼협공정(三峽工程)과 더불어 5천년 중국역사상 최대의 공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잇따른 장밋빛 소식들로 임오년(壬午年) 중국대륙은 온통 희망으로 부풀어 있다. 주변국들로선 차이나 쇼크에 빠질만하지만…. 아무튼 중국은 1972년 핑퐁외교 이후에도 덜 걷었던 죽(竹)의 장막을 활짝 걷을 태세다. 전면적인 세계무대 복귀의 신호탄일까.

중국사회과학원 정치학연구소의 빠이깡(白鋼) 교수는 "특히 베이징 올림픽 개최와 WTO 가입은 전국민의 사기를 한껏 북돋워주었으며, 중국의 세계화와 경제발전에도 견인차가 될 것이다. 다만 세계화.국제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빈부격차와 급증추세의 범죄 등 사회문제를 어떻게 잘 해소하느냐가 중국의 새로운 관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옥기자 siriu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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