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비마의 꿈

입력 2001-12-31 14:47:00

말(馬)은 예부터 벼슬과 힘과 지혜의 상징이었다. 정치에 뜻을 두고 후보로 나서는 것을 '출마(出馬)'라 하고, 어느 벼슬 자리에 누가 가게 될 것이라는 식의 입방아를 '하마평'이라 한다. 말 한 필이 낼 수 있는 힘을 뜻하는 '마력'이란 말이 여전히 동력의 단위로 쓰인다. 역사를 주름잡았던 영웅호걸, 신화나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말과 관련된 일화들을 무수히 남기고 있으며, 동서를 막론하고 말은 제왕 출현의 징표로 신성시되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만 하더라도 신화나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천마(天馬)는 하늘과 교통하는 신성한 영물(靈物)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말의 알에서 태어났다. 신라 고분의 '천마도'는 비장자의 승천을 기원하며 백마를 그려 묻었던 것이었다. 고구려 시조 동명왕(주몽)이 승천했다는 기린마도 같은 징표이며, 역시 말을 신성시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상서롭게 여기던 말을 현몽하면 길조라 했다. 12지의 일곱번째인 말의 해에 태어나면 지혜롭고 재주가 많으며 기민하고 독립심이 강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미신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는 봉건적인 가부장제 아래서 남편과의 역할 전도와 '우먼 파워'를 우려한 풀이이거나 일제 때 전래된 '왜색 미신'이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 사람들은 말띠 여자는 기가 드세고 세가 날카로워 남편을 깔고 앉을 팔자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임오(壬午) 말띠해의 새 아침이 밝았다. 우리 선조들은 한해가 시작되는 설날을 신일(愼日)이라며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했다. 한해의 운수를 좌우한다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사'를 다스리고 '복'을 부르는 풍습도 있었다. 서로 복 많이 받고 소원을 성취하라며 나누는 덕담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한해는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으므로 새해를 맞으며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속의 덕담이나 말의 상징과 징표들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되돌아보면 지난해는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상상을 초월한 테러와 반테러전쟁, 기상 이변과 사상 최고의 실업이 세계를 휩쓸었다. 우리는 불황과 실업의 그늘에서 추문과 비리, 부패와 분열의 냄새가 진동하는 갖가지 '게이트'와 '리스트'가 나라를 뒤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실망과 한숨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우리는 이제 진정 달라져야 한다. 양대 선거, 경기 전망, 각종 국제행사 등을 떠올리더라도 말처럼 활력 있고 지혜가 넘치는 한해가 되기를 새 아침에 염원해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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