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영화인 3인에 듣는 한국영화

입력 2001-12-31 00:00:00

임오년, 한국 영화시장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 것'마냥 더 한층 성숙되고 성장된 모습을 보일 것인가. 지난 해 객석점유율 46%, 1천만 관객시대를 기록하며 황금기를 보낸 한국 영화에 보내는 기대다.

본사는 이에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에 이어 최근 크랭크 인한 '오아시스'촬영에 몰두중인 지역출신 이창동 감독과 95~2000년까지 영화잡지 'KINO'편집장을 지내다 지금은 편집위원으로 있는 영화평론가이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도 활약한 정성일씨, 자동차극장인 씨네 스카이 대표 이중호씨로 부터 올 한해 한국영화의 전도와 과제 등을 짚어보는 장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1. 2001년 한국영화는 크게 성장한 해인데 2002년 전망은.

▲이창동=쉬 장담키 어렵지만 지난 해 추세를 유지할 것같다. 한국영화산업 발전의 제일 큰 기반은 기술이나 자본보다 인적자원인데 고급인력들이 많이 유입된데다 열기가 뜨겁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성일=한국영화는 이제 '규모의 경제'라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들어선 것 같다. 문화의 논리보다는 시장 논리에 의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제작자의 논리보다는 '자본의 싸움'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투자자들이 몰리는 현실에서 보면 당장의 한국영화시장은 밝다고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그러나 한국영화에서의 자본은 곧 국내시장의 한계에 부닥칠 것이고 결국 해외시장의 개척은 불가피하다.

▲이중호=지난해 한국영화의 성장은 다양한 영화소재를 선택한 것도 이유겠지만 영화사업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투자, 선진국형의 영화배급망, 그리고 하드웨어 측면으로는 도시마다 멀티플렉스(영화복합관) 개관 및 공격적인 마케팅이 관객을 창출했다고 본다. 다가오는 2002년엔 전년도 대비 20∼30%의 한국영화 신장이 기대된다. 제작 편수가 전년에 비해 20편 정도 늘었고 영화제작을 위한 대기 펀드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2. 한국영화의 꾸준한 성장 및 해외진출을 위해 우리가 개선해야 할 점과 기본적으로 가꿔나가야 할 것이 있다면.

▲이중호=한국영화의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기존의 끼워 팔기 형식이 아닌 해외 유수 배급회사와 연계 판권을 통한 수익배분방식이 우선시 되어야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작과정의 투명화, 배급망의 선진화, 관객수요집계의 전산화가 갖추어져야 될 것이며 국가차원에서는 칸 등 해외 영화제 등에서 영화 홍보에 주력해야 될 것이다.

▲정성일=영화시장은 점점 지역별로 블록화하고 있으며, 한국영화는 아시아 블럭에서 상품성을 획득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상품성이 한국영화의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의문스럽다. 시장과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가 해외에서도 성공하려면 무국적성이 필요한데 과연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따져볼 문제다.

▲이창동=해외시장진출은 대중영화시장이냐 예술영화쪽이냐는 두가지로 접근해야한다. '한류'붐을 타고 있는 동아시권엔 대중영화가 우리 시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곳을 벗어나면 할리우드가 판치고 있어 전혀 발붙이기가 어렵다. 반면 예술영화는 해외에서 나름대로 가능성의 문턱에 도달해 있다. 일반관객에게까지는 아니지만 해외영화전문가들에게 주목받는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턱도 넘어서기까지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3. 특히 지난해(2001)는 저예산 작가주의 작품들이 홀대받은 반면 조폭 영화가 판을 친 한 해라면서 걱정스런 전문가 시각도 많이 있다.

▲정성일=언제나 시장에서는 대중영화가 성공하고, 작가영화는 버림받기 마련이다. 그것은 어느 분야이든 마찬가지다. TV에서도 진지한 프로그램은 낮은 시청율을 기록한다. 어떻게 영화만이 진지한 영화가 성공하고, 대중영화들이 실패할 수 있겠는가? 한국 대중사회가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그러한 것을.

▲이중호=당장 상영관에서는 수익이 되는 영화를 놔두고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작품성 있는 영화를 상영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배급사들도 좋은 영화이지만 흥행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올 경우 시사회나 인터넷 홍보 등으로 적극적인 수요창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창동=작가주의 영화를 대중들이 많이 찾는 그런 행복한 결합은 거의 무망하다. 그럼에도 이런 작가주의 영화가 여전히 만들어질 수 있는 우리 시장 기반이 대단한 것이다. 결국엔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하고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같다.

4. 영화산업과 관련, 지역발전과 연계해 대구·경북지역에서 뭔가 도모해 봤으면 하는 제안이 있다면.

▲이창동=미래는 어차피 영상이 주도할 것이다. 그 핵심이 영화인데 지역에선 너무 소극적인 것같다. 먼저 독립영화나 단편영화 등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같은 것을 만들려는 청소년들의 욕구와 표현을 받아 줄 장이 필요하며 자치단체 등에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성일=대구에도 국제영화제가 필요하다. 부산에 있지만 부산까지 가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대구시민은 소수의 영화 애호가들뿐이다. 국제영화제를 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동시대성을 대구가 안을만한가를 보는 거대한 실험이다. 부산의 영화 애호가들이 대구로 오고, 대구의 영화 애호가들이 전주에 가고, 전주의 영화애호가들이 부천에 가고, 부천의 영화애호가들이 대구에 오고 하면서 비로소 우리들이 한 나라에 함께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비로소 지역격차와 같은 한국의 고질적인 병도 치료될 것이다. 여기서부터 대구의 영화문화가 새로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중호=대구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구성원이 되어 가칭 '대구 영화 사랑 펀드'를 조성, 영화산업에 박차를 가한다면 부산보다 더 나은 영화 도시가 될 것을 자부하며 대구의 지리적 특성상 영화촬영장(팔공산)을 만든다면 영화촬영은 물론 대구 또하나의 명물로서 떠오를 것이다.

5. 평소 영화관(觀)이나 덧붙이고 싶은 견해가 있다면.

▲이중호=영화는 그냥 영화 그 자체로 평가를 받아야 하며 소프트웨어의 중요성만큼 하드웨어의 측면도 중요하다. 극장주들도 관객들을 위한 최선의 서비스를 해야 할 것이다. 관객들도 영화투자금액이나 배우에 치우쳐 영화를 선택하지 말고 그 영화가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주목했으면 한다.

▲정성일=이미 다 얘기한 것 같다.

▲이창동=영화란 것은 환타지로써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꿈 또는 자극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관객 마음에 뭔가 흔적을 남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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