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주5일 근무 원년…변화와 파장

입력 2001-12-31 00:00:00

봉급쟁이들에게 새해 달력은 벌개졌다. 주5일 근무제 시행으로 휴일이 그만큼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에 만족하며, 지난 50년을 숨차게 뛰어온 대한민국 근로자들.

주5일제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이는 임오년(壬午年)을 맞는 그들의 얼굴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있다.

쭑달라지는 근로자의 삶=LG전자 해외서비스부문 손태익(31·경북대 졸업) 대리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가슴이 뛴다. 고향인 대구를 찾는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아내와 두살바기 딸. 1년전까지만 해도 손 대리와 손 대리의 가족은 한달에 1, 2번 만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말부부'의 이산설움을 날려보낸 것은 회사의 주5일 근무제. 토요일 오후 서울을 출발해 저녁 무렵에야 대구에 도착했던 빡빡한 예전 귀향일정과는 달리 이젠 이틀의 여유가 생겼다. "해외출장이 잦은 부서이니만큼 가족이 더 보고 싶어져요. 주5일 근무제가 되고 나니 회사 일에 능률이 올라가고 아빠, 남편 역할 점수도 높아졌어요". 지난해 연말에도 남미출장을 다녀왔다는 손 대리는 주5일 근무제가 가족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대구지사 우태혁(30)씨는 회사가 실시하는 격주 휴무제를 이용, 쉬는 토요일에는 스터디 그룹에 참여한다. 가족과 함께 레저활동을 즐기는 따위의 전통적 휴일문화 뿐만 아니라 근로자 학습시대도 주5일 근무제가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놀러도 가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기계발에 소홀히 해선 안되는 요즘 세태에서, 예전엔 바빠 못배웠다지만, 이젠 배우면서 일하는 시대가 됐어요". 우씨는 격주 휴무가 장기적으로 회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식문화도 바꾸고 있다. 금요일 저녁이면 '부어라 마셔라'류의 막가파식 술자리가 많았지만 이젠 금요일 회식이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격주휴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은 올 초 토요 격주 휴무제를 도입한 뒤 회식문화의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금요일 저녁만되면 회사 주변 술집·음식점에서 '어슬렁거리던' 직원들이 사라져 버린 것. 이 회사 인사과 관계자는 "쉬는 토요일이 낀 금요일 저녁에는 대다수 직원들이 회식을 꺼린다"며 "결국 금요일 회사 회식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쭑산업지도가 바뀐다=홈플러스 대구 칠성점의 지난해 토요일 하루 평균 매출은 8억여원이었다. 하지만 각 사업장의 토요 격주휴무제가 확산된 올해 들어서는 6억8천여만원으로 감소했다. 토요일 오후 일을 마치고 쇼핑하던 사람들이 레저활동으로 빠져나가면서 토요일 쇼핑이 줄어든 탓이다.

그 대신 일요일 매출은 늘어났다. 레저활동에서 사람들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할인점의 일요일 하루 평균 매출액은 7억6천여만원이었지만 올해는 8억2천만원으로 증가했다.

완전한 형태의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진 않았지만 벌써부터 주5일 근무제는 산업지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뜨는 산업과 지는 산업의 명암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업종은 역시 레저관련 산업과 외식·유통업계. 삼성테스코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늘어난 휴무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하자 응답자 대다수가 '가족과 함께'라고 대답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식사를 함께 하겠다는 근로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업계와 레저업계의 매출팽창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격주 휴무제 확산 이후 경주 등지의 콘도 잡기는 더욱 힘들어졌고 주말 대구시내 주요 식당가는 발디딜 틈이 없어졌다.

근로자들의 학습수요가 높아지면서 각종 학원가의 영업상황도 더욱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당초 정부의 주5일 근무제 시행의도처럼 서비스 업계의 활황은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도 주5일 근무제 도입후 서비스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섬유와 가전업계, 건설업 등은 노동비용을 더욱 많이 투입해야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 김형기(경제학) 교수는 "여러가지 우려도 제기되지만 주5일 근무제는 인력난을 겪고 있는 산업현장에 청년근로자가 유입되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주5일 근무제는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구조적 전환을 가져와 결국엔 산업 각 부문에 대한 체질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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