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다, 저기!" "빨리 빨리! 훌치기를 해라!" "아니야, 방파제 끝으로 바짝 붙을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23일 오전 9시쯤 울진 후포항 남방파제에서는 20여명의 남자들이 손에 갈고리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이리저리 쫓아 다니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방파제 밖 삼발이라 불리는 테트라포트(TTP, 방파제 보호용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까지 올라 가 위험한 훌치기를 하고 있었다.
10여m 떨어진 수면 위에서 느릿느릿 연안으로 들어오는 원추형의 괴물체 '대포알 오징어'를 잡으려 씨름하고 있는 것.
10여분 후. '휘릭'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와'하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가 훌치기한 낚시에 대포알 오징어가 걸려든 것. 갈고리로 찍어 올린 이 대어의 몸통은 족히 70cm는 돼 보였다. 이날 오전 이렇게 잡힌 오징어는 무려 15마리나 됐다.
생김새가 포탄을 닮았다고 해서 '대포알 오징어'라 불리는 이 물고기의 본래 이름은 지느러미 오징어. 몸길이가 보통 50∼80cm 되고 큰 것은 1m가 넘으며, 무게도 10∼20kg에 달한다. 한국.일본 전 연안에 광범하게 살지만 보통 오징어를 잡는 채낚기로는 잡히지 않고 동해남부 해역의 대형 트롤어선이나 정치망 등에서 소량 잡히는 희귀어종.
북한 김정일이 얼마 전 강원도 앞바다에서 1m짜리를 잡아 김일성대학에 교육용으로 기증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한 적이 있기도 하다.
대포알 오징어가 후포 등 동해안 바닷가로 몰려드는 것은 산란기인 11월 말부터 1월 말 사이. 몸통이 근육질이어서 고기 맛이 부드럽고 담백, 크기에 따라 마리당 2만5천∼4만원씩 나간다. 일식집 등에서 주로 사 가나, 한 마리면 20∼30명이 거뜬히 먹을 수 있어 단체손님을 치르는 잔칫집에서도 인기.
이때문에 최근에는 대포알 오징어를 전문적으로 잡는 꾼들이 생겨날 정도라고 후포항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재미삼아 잡던 이모(32.후포)씨는 아예 식당에 고정 납품하는 부업거리로 삼아 올 들어서만 무려 100마리 넘게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년 전 매일신문을 통해 소식이 널리 알려진 뒤엔 후포항으로 몰리는 포항.대구 등 외지 낚시꾼들도 부쩍 늘었다. 이영석(34.포항 오천읍)씨는 "신문을 보고 찾아 와 23일 오전에도 2마리 잡았지만 몫을 뺏긴다고 생각하는지 현지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대포알 오징어는 구애 행위가 화려하고 수정 방법도 보통 물고기와 달리 자웅 교접 방식인 것이 특징. 김경호(40.후포)씨는 "교접상태에선 웬만한 외부 충격에도 떨어지지 않아 한번에 두 마리를 잡을 때도 있다"고 했다. 또 수컷이 잡히면 암컷은 도망가지만 암컷이 먼저 잡히면 수컷은 도망가지 않고 주위를 맴돌다 결국 두 마리 다 잡히는 경우도 왕왕 보게 된다는 것. 방파제에서 만난 최선균(45)씨는 "이혼율이 급증하는 요즘 보잘 것 없는 대포알 오징어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경외로움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고 했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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