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경허 스님과 엘리아 카잔 감독

입력 2001-12-22 14:34:00

사회의 인심이 각박해서인지 각종 고소 사건이 끊이지 않아 법원은 시장인 양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가르치던 한 학생이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법원을 찾은 적이 있다. 오후 2시 판결이라고 예고되어 그때부터 기다렸는데 수많은 소송사건에 밀려서인지 5시쯤 되어서야 재판이 진행되었다. 세 시간 동안을 긴장감 속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다 보니 재판이 끝나고 법원을 나올 때는 너무 피곤하여 몸살이 날 것만 같았다. 살면서 재판에 연루되는 것도 우리들 인생에서 겪는 한 혹독한 시련임에 틀림없으리라. 고발과 관련해 비교되는 두드러진 예를 경허 스님과 엘리아 카잔 감독에서 찾아본다.

◈누명을 쓴 경허 스님

불교계의 큰 별 중의 하나였던 경허 스님이 한 때 세속의 살인 사건에 혐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자신을 따르던 사미승이 숲 속에서 목매여 죽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현장에는 스님 소유의 바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20년간 머물렀던 호서에서 영남으로 암자를 옮긴 시점과 맞물려 살인범의 누명을 단단히 쓰게 되었다. 물론 스님은 그 사건의 내용과 용의자도 알고 있었지만 일절 말이 없었다. 제자 만공이 세상의 소문을 듣고 자초지종을 묻자 마침내 스님은 "그 사미승을 죽인 사람은 바로 날세, 내가 영남으로 건너온 것은 살인죄가 발각날까 도망쳐온 것이네. 이상이네 만공. 이 비밀은 자네만 알고 있어야 하네"라며 만공의 손을 어루만지며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후 진실이 밝혀지고 진범이 잡히게 되어 경허는 누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스님이 살인사건에 대해 입을 열어 밝히지 않은 것은 아마 다른 누군가를 고발하는 것은 업을 수행하시는 스님의 입장에서는 죽기보다도 더 힘드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카잔 감독의 회한

엘리아 카잔 감독은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영화 감독이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한 고발 투로 내뱉은 말이 화근이 되어 평탄하지 못하게 되었다. '50년대 매카시즘 선풍이 미국을 휩쓸 때에 공산주의 사상이 배어 있는 영화는 다 찾아내야 된다라는 시세에 편승한 정치적 주장으로 인해 그는 유능한 감독이었지만 명성을 잃게 되었다. 그 후 좋은 작품을 만들어 한 때의 실수에 대해 보상하려고 노력을 경주하였지만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수십년이 지난 후인 몇 해 전에 할리우드 영화계는 늦었지만 공적을 인정하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그렇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아직도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고 있는 양 박수 반, 야유 반이었다. 남을 고발하는 한 마디의 말은 결코 잊지 않는 것이 세상인심 아닌가. 셰익스피어도 세상 인심을 두고 "인간이 살아서 행한 착한 일은 그 시신과 함께 묻혀지지만 악한 일은 역사에 영원히 남는 법"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삶의 역설적 의미

이 두 가지 예를 통하여 경허 스님을 예찬하거나 카잔 감독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어내어 그의 인격에 어떤 흠을 지적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쁜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경허 스님의 경우처럼 깊은 철학적 인식에서 우러나온 생각으로 나날의 일들을 대처할 수는 없다. 또한 카잔 감독의 경우처럼 한 때의 처신을 뉘우치고 살아가는 인생이 결코 못난 인생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볼 때 뉘우치고 살아가는 인생은 더 값질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의 스승인 퇴계 이황의 "고소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라"라는 훈계처럼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아 고소 사건이 줄어드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인직 경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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