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성적평가

입력 2001-12-22 00:00:00

대학생은 정신적으로는 성인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독립적 성인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야 정상적인 성인으로 대우를 받는다. 따라서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취직이란 지상최대의 과제다. 요즈음같이 취직이 어려운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강의 첫 시간에 결석이 전체 수업일수의 3분의1에 이르면 어떠한 경우도 수강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해왔고 이를 지켜왔다. 이 원칙 때문에 2학기말이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취직시험 공부를 하다가 결강했다는 학생, 취직을 했기 때문에 나올 수 없었다는 학생들이 선처를 부탁한다. 내 성적이 나가지 않으면 취직이 취소된다는 딱한 사정을 호소한다. 나는 이들에게 언제나 같은 말은 되풀이하게 된다.

"성적평가는 학생과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적평가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내 강의를 듣는 모든 학생에게 지켜지는 균형입니다. 내게는 이미 같은 이유로 성적을 받지 못하고 나간 학생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성적에 한해서는 더 이상 자유롭게 운신할 수 없습니다".

학생은 이 말에 절망하고 나도 그 순간 내가 싫다. 그러나 대학의 사명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눈앞에 보이는 문제는 배우지 않아도 해결할 줄 안다. 따라서 배움이란 전체 구조 속에서 보이지 않는 규칙들의 가치를 깨닫고 준수하기를 가르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과 전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배우는 이는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책임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를 행하는 곳이 학교이다.

"겨울방학동안 열리는 계절강의로 학점을 채우십시오"라는 내게, 학생들은 "교수님 죄송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라며 돌아선다. 나는 이 학생들에게 하나의 쓴 경험을 통해 사회에서 더 큰 것을 지키며 살게 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는 그들의 등뒤에서 꼭 이래야만 하는가를 자문하곤 한다. 그 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이 세상을 살아온 나도 자신에게 귀찮고 손해가 나는 일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는 학생들이 있어 나는 순간마다 더욱 최선을 기울이는 교수로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 전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 스승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 스승을 만들어가야 한다. 김정숙(영남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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