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산업정보대학-안경학과 주부학생 손호순씨 사연

입력 2001-12-21 15:40:00

안경광학과 졸업반인 손호순씨는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주부다. 서른여덟이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앳돼 보이는 얼굴. 이른바 '386세대'인 그가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대에 다시 입학한 사연을 들어봤다."제가 83학번인데 1987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13년을 보냈죠. 졸업할 당시에도 취업난이 심각했고, 특히 여자는 취업이 더 어려웠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는데 문득 이렇게 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아직 손씨의 자녀들은 엄마가 대학에 다니는 줄 모르고 있다고 했다. 그저 뭔가를 배우러 학원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 새벽에 일어나 자녀들 등교 준비시키고, 간단하게 집안 정돈을 한 뒤 등교하고, 오후 4, 5시쯤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하는 생활을 2년동안 했다. 힘들고 고달픈 생활을 굳이 선택한 이유를 물어봤다.

"옛날에 대학 입학할 때 점수에 맞춰 2지망에 합격했어요. 원하던 전공도 아니었고 취업길도 좁았습니다. 때문에 대학시절 추억이라곤 놀러다닌 것뿐에요. 늦게라도 제가 하고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전문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특히 우리 학교는 대학을 졸업한 뒤 재입학한 분들이 많습니다. 꿈을 찾아오는 분들이죠".

손씨는 작년에 수능을 치르지 않고 '전문대.4년제대 졸업생 특별전형'에 지원했다. 대학시절 성적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 첫 학기를 빼고는 3학기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1등은 못했지만 2, 3등은 항상 차지했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터라 마음놓고 책상에 앉아 공부할 입장도 아니었다. 때문에 반찬 만들면서 식탁에 펼쳐놓은 책을 훔쳐보고 시험공부를 했다. 요즘은 안경사 국가자격시험에 대비해 막바지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자와 만난 날도 시험 대비 특강을 듣기 위해 학교에 나왔다고 했다."세태가 바뀌어서 그런지 대학생들 정말 열심히 공부합니다. 전문대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매일 5, 6시간씩 수업도 빠듯하고, 대리출석은 꿈도 못꿔요. 마치 고등학교 시절을 다시 보내는 기분이랍니다. 특히 교수님들이 어떻게든 학생들의 학력을 원하는 기준까지 끌어올리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산업정보대 안경광학과의 자격시험 합격률 85%선으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돈다. 마치 고3 수험생들에게 수능대비 총정리하듯이 매일 특강이 열린다. 손씨는 졸업한 뒤 안경점을 차릴 계획이다. 전업주부에서 어엿한 사장님으로 변신하는 것. 어느 대학에 진학할지를 두고 갈등하고 있는 수험생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른바 '간판' 따려고 대학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겠죠. 누구나 잘 하고, 또 좋아하는 분야가 있을 겁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만드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뒤늦게 재능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평생 자신이 잘하고, 또 원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후배들도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랍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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