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세상읽기-정당의 민주화를 위해

입력 2001-12-18 00:00:00

잊고싶은 게 많은 망년의 계절이다. 내년 이맘때는 나라 전체가 어떤 분위기일까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선거의 해에 월드컵 행사까지 겹쳐 부산을 떨다가 맞게될 내년 망년회는 일말의희망이라도 걸 수 있는 모임이 될까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들의 선택에 의하여 지방 행정 부서의 일꾼과 국민의 심부름꾼이 바뀐다는 점이다.

많은 변모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역, 계층, 신구 세대간의 갈등은 자꾸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내년 선거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며, 그 후유증 또한만만찮을 듯하다. 자칫하면 선거행위 자체가 엄청난 국론 분열의 양상으로 치달을 수도 없지 않을 조짐이다. 사냥과 낚시, 선거 때 거짓말을 않는 사람은 없다는 속담만 봐도 가히 상상할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정책 대결이나 객관적인 인물 평가보다는 여전히 '지역 정서'와 '대세론' 등등으로 득표하려는 여론몰이 정치에 좌우 당하는 국민들의 의식 형태는 언제나 '뽑아놓고 욕하기'의반복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어쩌다가 우리 정치가 이 지경일까.

정치인 개개인을 만나보면 그래도 우리시대에 가장 현명하고 사려 깊은 분들이 모인 집단이구나 싶은 탄복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정가를 주름 잡는 인사들의 상당수가 정계에 투신하기 전에는 저마다의 분야에서 발군의 재능을 자랑할만한 인재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어쩐 셈인지 일단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인상과 몸가짐부터 달라지면서 영 딴 사람으로 변해가니 참 신통한 조화다. 생각해 보면 근본원인은 딱 한가지로 귀착된다. 바로 보스정치 풍토 때문이다. 세상은 다 민주화니 개혁이니 하면서 몇 차례나 바뀌었으나 정당은 여전히 광복 직후의 보스 정치풍토 그대로인 데서 아무리 새 술을 갖다 부어봤자 그 낡은 부대에서 썩는 냄새만 진동할 뿐이다. 정계의 등용문인 국회 진출에 긴요한 첫 관문은 말할 것도 없이 당내 공천이며, 그 요건은어떤 미사여구로 분장해도 당 지도부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진정한 민주정치가 뿌리 내릴 수 있을까? 일인 지배의 정당구조가 지난 날 우리 정치사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정당을 창출케 하여 아예 당명조차 기억하기어렵게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대통령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그 정당이 분해되고 말았던 게 지난 날의 한국 정당사이고 보면 정당이란 대통령을 위한 시녀였대도 지나치지 않는데, 그나마도 은퇴 후 존경받는 대통령을 하나도 가져보지 못한 처지라 그 당당하던 정당이 임기만료와 동시에 침몰해 버리지 않았던가.

아마 내년에는 이런 정치판도를 국민들이 바꿔야 할 것이다. 우선 지방자치단체장 공천부터 아래로부터의 민의를 반영하지 않고 위에서 하향식으로 낙점하는 정당에 대하여 현지인들이 본때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현지 당원들의 의사에 따른 공천의 원칙은 어떤 결점이 있더라도 민주주의의 기본이란 점에서 권장할만한 제도일 것이다. 이로 말미암은 폐단은보완하면 될 일이지만 중앙집권적인 공천방식은 한국정치를 낙후한 보스체제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도록 발목에 사슬을 채우게 될 것이다.

대통령 후보 문제는 어떨까.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국처럼 권위주의적이고 편견과 선입견과 감정적 판단이 앞선 나라에서는 반드시 각 당마다 내부적으로 많은 후보가 난립하여치열한 경쟁 속에서 온갖 문제점을 다 노출시켜 정당한 경쟁을 거쳐야 할 것이다. 지역을 돌며 비당원들도 대거 참가하는 예비선거를 실시하는 미국과 같은 공개된 축제형식이 우리에게도가장 적합한 절차가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다 이런 정치개혁의 목소리가 당내에서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제야 정치인들이 보스의 눈치를 벗어나 자립하여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게끔 정치개혁을 하려는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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