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

입력 2001-12-13 15:11:00

대통령 안보보좌관 니콜 키드만과 해군 정보 장교 조지 크루니가 핵무기 운송통로의 비밀 자료를 빼낸 뒤 오스트리아의 한 광장에서 테러범들의 추적을 받자 신형 모델인 벤츠 S 클라스 모델의 자동차가 악당들의 자동차를 박살낸다. 이때 악당들의 자동차는 독일산 자동차 BMW.

스필버그가 설립한 드림웍스사가 창립기념으로 97년 제작한 '피스 메이커'는 자동차회사의 치열한 판촉전략으로 화제가 된 영화. 벤츠사는 자사의 자동차를 영화에 출연시켜 BMW를 반격하기 위해 엄청난 제작비를 지원했다. 2년전 제임스 본드의 '골든 아이'에서 주인공이 BMW를 몰고 나타나 악당이 타고 다니던 벤츠 자동차를 형편없는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소도구로 등장시키거나 배우들이 지니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PPL(product in placement). 자동차업계에서 특히 선호한다.자동차는 기계적 특성, 디자인, 안전도를 우리나라 방송규정인 최다시간 30초 분량의 CF로도 담기가 쉽지 않고 광고제작비가 엄청나다. 또한 MBC 뉴스데스크와 같은 시간대 15초짜리 광고를 한번 내보내는 데 553만원이나 든다. 하지만 영화속 주인공이 타는 자동차는 관객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다.

물론 영화의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자동차 판매에 부정적인 경우도 있다. 부유층을 묘사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자동차는 값비싼 것으로해석되지만 같은 자동차가 달동네에 사용되면 서민용 상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영화화면에 나타나는 1초 동안의 동작은 24개 프레임. 인간의 망막이 지니는 1/10초 동안의 잔상효과로 인해 24개의 정지된 화면이 연속되면 하나의 움직임으로 보여진다. PPL은 이중 1개의 프레임을 활용한다. 관객이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줄거리와 상관없이 삽입이 가능하고 관객의 무의식세계에 잔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래시계'에서 구형그랜저가 줄지어 지나가는 멋진 장면 이후 중고차 시장에서 검은색 그랜저가,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차인표가갤로퍼를 타자 이 자동차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판매와 상관없는 자동차는 당당한 출연료를 받는다. '은실이'에서 이경영이 주로 이용하던구형 지프는 하루 대여료가 30만원. 실제로는 움직이지만 촬영장까지의 이동은 견인차의 모심을 받는 귀한 존재이다. 일상과 마찬가지로 영화판에서도 공짜는 없는 법이다. 한상덕(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sdhantk@yahoo.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