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오진우 조카 오염호씨 묻어뒀던 이야기

입력 2001-12-08 15:19:00

"변변한 직장 한번 가져본 적 없습니다. 신원 조회에서 번번이 좌절됐었지요". 북한 인민군 무력부장이었던 오진우가 자신의 큰 아버지라고 처음 밝힌 오염호(59.포항 장기면 창지리)씨. 월북자 가족 중 한 사람인 그의 한숨은 깊었다.

"국가가 하는 사업, 특히 반공이라든가 새마을 교육 같은 덴 누구보다 먼저 참가하는 등 국가를 안심시키려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30대 후반 때 한번은 일하러 갔다가 귀가하니 낯선 사람들이 방안을 구석구석 뒤지고 있더군요. 경찰이라면서. 그때부터 '나는 국가를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강변하려 교육 수료증들을 방 안에 내걸어 두기 시작했지요".

군대 가는 것은 물론 월남전에까지 참전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더라는 오씨는, 통장을 11년간이나 맡았던 것도 같은 노력 중 하나였다고 했다. 더우기 얘기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로 옮겨가자 눈 가에는 경련마저 일었다. "아버지의 일생은 더 기구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기관원들이 건넨 명함철을 찾으시더군요. 평생 '나는 오진우와 아무 관계 없다'고 극구 부인하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털어놓고 가시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한때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었다는 오씨는 그러나 "이제는 다 옛날 일"이라고 했다. 몇년 전부터 기관원들의 발길도 끊겼고 남한 사람들이 드물잖게 북한에 드나들 정도가 돼 마음이 편하다는 것. 그리고 "가슴에 묻어뒀던 얘기를 처음으로 공표해 버리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는 말로 대화를 마쳤다.

그러나 재산 없이 빈한하게 살아야 하는 생계, 대처로 뿔뿔이 흩어져 연락조차 부실해진 가족들…. 만신창이가 된 상처는 어쩔 수없는지 이야기를 마치고도 그는 끝없이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포항.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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