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전남 담양 소쇄원

입력 2001-12-07 14:20:00

대구를 비롯, 경상 전라 충청도 지역에 12월 들면서 첫 눈 치고는 꽤 많은 눈이 내렸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겨울이어도 비교적 포근한 남쪽. 북풍이 불면 그 잎들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더욱 겨울맛을 깊게 해주는 대숲. 전남 담양에는 겨울을 따뜻하게 감싸안은 선인들의 여유와 대나무 향기가 배어 있다. 발길이 닿는 곳이면 정자요, 대숲이다. 길떠난 사람들은 모두 가슴 가득 훈훈함을 안고 돌아올 수 있어 매력적이다.

담양은 무수한 정자를 중심으로 가사문학이 활짝 피어난 곳이기도 하다. 담양군 남면 지곡리 소쇄원. 선인들의 유유자적한 행적을 따라 지금도 하루에 수십, 수백명이 몰려들어 '소쇄'한 곳이 아니라 '번잡'한 공간이 돼 버린 듯하다. 그러나 비라도 세차게 내리거나 날씨가 나쁜 날에는 관광객들이 급격히 줄어든다고 관리인은 말해준다.

들머리 양쪽으로 빽빽한 대나무 숲길이 경상도 손을 알아차리고 반겨 준다. 숲길은 약 100m쯤 될까. 주차장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대밭이 이어진다. 소쇄원은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인 셈이다. 햇살이 나와도 한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일 정도로 촘촘하다. 대숲 사이로 개울물이 흘러 나온다. 빗소리.물 흐르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린다. 흔히 보기 드문 광경이다. 사람들은 대나무를 절개의 상징이니 대쪽같은 선비의 표상이니 칭송한다. 그러나 이곳의 대숲은 서늘하면서도 푸근하다.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말을 해주려는 듯.

대숲이 끝나면 앞쪽으로 담장과 대봉대가 보인다. 또 다른 광경이 시작된다. 대봉대 아래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입구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조금 더 큰 연못이 있다. 도랑을 타고 온 계곡물이 먼저 작은 연못을 채우고, 그 물이 넘치면 다시 도랑을 따라 큰 못으로 흘러들게 돼 있다. 옛날에는 두 못 중간에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한다.

대봉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그리 높지않은 돌담이 기와를 얹고 서 있다. 담은 ㄱ자로 꺾인다. 소쇄원에 들어온 사람은 이곳에서 계곡을 건너게 된다. 광풍각과 제월당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다. 제월당이 주인의 사적 공간이라면 광풍각은 사랑방격으로 소쇄원의 풍광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중심공간이다.

다시 짚어보면 야트막한 동산, 그리 높지 않은 흙돌담, 고목이 된 소나무, 뒤편 산에서 졸졸 흘러 내리는 개울, 그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연못, 그리고 그 한가운데가 정자다. 이 모두가 서로 부딪힘없이 소쇄원을 한덩어리로 받쳐 주고 있는 셈이다.

소쇄원은 옛 주인이었던 양산보가 짓기 시작한 이래 3대, 70년간에 걸쳐 완성한 정원이다.

양산보는 자기의 마음이 샅샅이 닿은 이 정원을 너무 아껴서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 것이며, 하나라도 상함이 없게 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도 말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 덕일까. 오늘날 우리는 이 조선시대 민간 정원의 백미를 비교적 원형대로 볼 수 있게 됐다. 일반관광객뿐만 아니라 조경학, 건축학 전공학도들의 필수 답사코스가 된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담양에는 소쇄원외에도 후학을 가르치며 붓질과 술잔을 기울인 선비들의 공간이 즐비하다.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 명옥헌 등이 그곳이다. 이 모두를 둘러보기 전에 가사문학관을 먼저 둘러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바로 소쇄원 지척이다.

가사문학관은 탁트인 광주호를 곁에 끼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인 이곳은 정철의 성산별곡, 송순의 면앙정가, 남석하의 백발가 등 주옥같은 가사문학 자료와 친필 유묵 등 2천4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 조선 후기의 대표적 장르였던 가사문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대구에서 담양으로 가는 길목인 담양읍에 있는 죽물박물관에는 1천800여점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단지안 판매점에서는 값싸고 질좋은 죽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지금은 다소 허전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300년 역사를 가진 죽물시장이 담양천 고수부지에서 5일(2일, 7일)마다 열려 길손의 발길을 붙든다. 담양군청 061)380-3224.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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