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계좌추적에 제동 장치를 마련한 금융실명제법 개정법안의 내년 7월 실시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 사생활 보호는 물론 인권보호라는 측면에서도 크게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금융정보 제공은 통장 명의인에 통보하지 않아도 되고 계좌추적 통보 유예기간도 최장 1년으로 한 것 등은 여전히 악용의 소지가 있어 아직도 갈 길이 험난하다.
지난달 30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의 핵심은 국가기관이 계좌추적을 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때는 반드시 재경부 장관이정한 표준양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표준양식에는 자료를 요청한 기관의 담당자·책임자의 이름과 직책을 반드시 기록하고 제공된 정보, 계좌추적 요구의 법적 근거는 물론통장 명의인에게 통보한 날짜를 명시해야 한다고 하니 연결 계좌 및 포괄적인 계좌 추적이라는 악습이 원천봉쇄되는 셈이다. 특히 금융기관이 수사기관의 요청으로 정보를 제공한경우 10일 이내에 통장 명의인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예금자 보호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지난 93년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전격 도입된 금융실명제는 가차명 예금계좌 추적 과정에서 각종 비자금을 밝혀내는데 상당한 기여를 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법치(法治)보다는 행정편의를 앞세워 예외 규정이 생기고 온갖 편법이 동원되면서 금융실명제의 취지가 엉뚱한 데로 가고 있다. 올 상반기 중 실시한 계좌추적 17만2천800여건가운데 영장이 제시되지 않은 경우가 13만7천800여건으로 전체의 80%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아무리 불법 계좌를 파헤친다 하더라도 사생활 보호와 인권에앞설 수는 없을 것이다. 혐의자 3, 4명을 찾기위해 1천~2천명의 거래정보를 마구 뒤지는 일은 자본주의의 장기적 발전을 저해하는 폭거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그 법정신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으면 악법이 될 수 있다. 이번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에서 악용의 소지를 없애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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