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1-12-03 00:00:00

깨진 그릇은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히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오세영 '그릇'

그릇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이다. 완결이라는 단어는 균형과 절제가 전제되어 있다. 균형과 절제가 무너졌을 때 세계는 어떻게 될까? 그릇은 깨어져 살을 베고, 세계는 혼돈 속에서 맹목의 사랑이 넘칠 것이다.

여기서 맹목의 사랑은 파탄을 의미한다. 이 시는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찬사이다. 그러나 '상처 깊숙히서 성숙하는 혼'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상처 속에서 성숙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합리성보다 맹목에 더 가까이 있는 지 모른다.

김용락〈시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