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시오 벗님네들 이내소리 들어보소(47)

입력 2001-11-28 00:00:00

빚 독촉에 몸 파는 노래 징거미타령

"우리 옌변에선 말임다. 삼수생? 고건 재수생 축에 끼지도 못해 모의고사 마킹도 몬함다. 고저 5수 정도는 해야 모의고사 마킹도 하고 채점도 함다. 한 10수 정도 하면 눈 감고 팍팍 찍어도 390점 정돈 나옴다". 어느 방송에서 개그맨이 연변 사투리로 시청자를 웃긴 코메디이다. 그러나 수능을 마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마음 편하게 따라 웃을 수 없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다급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능 문제로 법석을 떨게 마련이지만 올해는 시험문제가 어려워서 교육부총리가 직접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별난 일까지 벌어졌다. 벌써 고3들은 수능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학원을 찾는다. 서울 강남지역에는 한 달에 2, 3백만원대 고액과외가 성행하고 중산층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탓에 살림살이가 쪼들린다고 아우성이다. 어떤 주부들은 과외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로 유흥가에서 몸을 파는 이도 있단다. 과외와 사교육비 문제,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이든 팔아서 소액과외라도 시켜야 할 사정이다.

앗따 이넘의 징금아

내 돈 석 냥 내놔라

이 내 머리 비어서 월자전으로

돌려도 니 돈 석 냥 갚으마

눈알을 팔아서 시계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가리마

이내 입을 비어서 나팔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마

이내 창자 비어서 빨래줄로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마

이 팔을 비어서 짭주지 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마

이 내 다리 비어서 재치개로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꺼마

예천 사는 박부돌 할머니의 징거미 소리이다. 흔히 징금이 타령이라고 한다. 징거미는 민물새우이다. 바다새우보다 크고 검은 빛을 띠고 있으며 맑은 물에만 산다. 빚 독촉에 몸을 베어 파는 노래를 하면서, 왜 징거미를 노랫감으로 가져왔는지 알 수 없다. 새우를 잡아보면 길게 뻗은 앞발의 집게 다리가 잘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듯이 징거미도 집게 다리를 떼어버리고 곧잘 물 속으로 달아난다. 여기에 착상을 해서 다리나 팔을 베어 파는 징거미 타령을 부르지 않았을까 한다.

내 돈 석 냥 내 놔라고 다그치니, 머리를 베어서 월자 전(廛)에 팔아서라도 니 돈 석 냥을 꼭 갚겠다고 한다. 월자는 머리카락을 세 가닥으로 땋아서 한 개의 얹은머리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여자들의 머리장식 용품이다. 다른 노래에서는 흔히 달비 전에 판다고도 한다. 요즘 같으면 가발상점에 팔겠다는 것이다. 눈알을 빼어서 시계 전에 팔겠다고 하는 것은 얼른 알아듣기 어렵다. 그러나 뻐꾸기 괘종 시계가 시간마다 뻐꾹 소리를 내며 눈알을 좌우로 돌리는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팔은 짭주지 전에 팔겠다고 하는데, 짭주지는 지팡이의 사투리이다. 팔을 지팡이에다 은유한 것이다.

이 내 눈을 빼서 불콩 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꺼마

이 내 코를 빼서 동곳 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꺼마

내 손을 끊어서 까꾸리 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꾸마

내 다리를 비서 재치기 전에

팔아도 니 돈 석냥 주꺼마

같은 동네 김옥난 아주머니 소리이다. 징거미 타령은 원래 두 사람이 주고받으면서 부르는 것이 제격이다. 앞소리꾼이 '앗따 이놈의 징금아 내 돈 석 냥 내놔라'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부르면, 뒷소리꾼은 '내 무엇을 베어 팔아도…'하는 말을 그때마다 다르게 받는다. 노래의 틀이 일정하여 해당 내용만 바꾸어 넣어 부르면 된다. 노래 형식이 단조롭기 때문에 재미없을 것 같지만 몸의 어디를 베어서 무슨 전에 갖다 파는가 하는 내용이 흥미로워서 듣는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갖다 파는 가게도 제각기 다를 뿐 아니라 파는 품목도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눈을 빼서 시계 전에 판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불콩전에 판다고 했다. 검고 흰 눈알을 불콩으로 은유한 셈이다. 팔은 지팡이 전에 팔지만 손은 까꾸리(갈퀴) 전에 팔아야 제격이다. 그런데 다리는 왜 '재치개' 전에 팔까. 재치개는 부엌 아궁이 속에 있는 재를 쳐내는 도구이다. 다리 끝에 발이 달려 있는 모양을 T자로 연상하여 재치개에다 견주어 노래한 것이다.

내 코를 비이서 구톡 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꺼마

내 대가리로 비이서 장군이 머게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꺼마

내 손을 비이서 호미 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꺼마

내 배꾸멍을 비이가 뜸더듬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꺼마

내 미자바리로 빼애서 곶감 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꺼마

내 복개로 빼애가 호부래비 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 주꺼마

울산 사는 김원연 할머니 소리이다. 구톡 전은 굴뚝을 파는 가게를 말한다. 다 같은 코라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코는 사실상 굴뚝이나 다름없으니 그럴 만하다. 눈도 빼고, 코도 입도 베고 나면 마침내 머리통까지 벤다. 월자 전에 파는 머리와 구별하기 위해 '대가리'라고 했다. 그럼 대가리는 어디다 팔까. 똥장군 마개로 팔겠단다. 그러고 보면 대가리를 가장 천박한 쓰임새에다 비유한 셈이다.

새로 '뱃구멍'과 '미자바리', '복개'도 등장했다. 뱃구멍(배꼽)을 베어서 판다는 뜸더듬은 무엇일까. 뜸을 뜬 자리가 아닌가 한다. 뜸뜬 자리에 흉터가 생기는데, 그 자리에 예쁜 모양의 배꼽을 오려다 붙이겠다는 뜻인가보다. 미자바리 곧 항문까지 팔겠단다.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가장 더러운 부분을 맛있는 곶감 가게에다 팔겠다니, 머리통을 장군 마개로 팔겠다는 발상과 반대 방향으로 어긋지게 나가는 셈이다. 복개는 여성의 성기를 일컫는데, 이를 호부래비(홀아비) 전에 팔겠다니 금방 팔리겠다. 그러고 보면 팔지 않는 것이 없다.

잠질랑은 띠어서 저울대 전에다

팔아도 니 돈 석 냥은 갚아주께

불알을랑은 띠어서 저울추 전에

팔아도 니 돈 석 냥은 갚아주께

열 다섯 가지를 다 팔아도

니 돈 석 냥을 못 갚겠다

잠지와 붕알까지 다 팔아도 빚진 돈 석 냥을 못 갚는다고 하니 이 노릇을 어찌할까. 마치 사교육비에 발목잡힌 우리 가정경제를 보는 듯하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수능시험의 서열화로 과외가 더욱 극성인 데다가, 최근에 교육 당국의 고액과외 규제 포기로 사교육비 증가는 고삐 풀린 망아지나 다름없게 되었다. 사교육비 때문에 아이 낳기가 두렵다는 이도 있다. 그래서 교육이민까지 간다.

공교육이 인간교육이나 문화교육을 외면한 채 입시교육과 취업교육에 매달려 있는 까닭으로 교육이 한갓 부귀영달을 꾀하는 일종의 자식 투기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 수능 성적과 출신 대학이 인생을 좌우하는 탓에, 과거 반상의 신분제와 같은 학벌 신분제를 강고하게 만들어 가는 한, 신분상승을 위한 사교육비 문제는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학벌사회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고 입시 위주의 학교교육을 과감하게 개혁하지 않는 한, 과외비 때문에 학부모들이 팔다리 품을 파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몸까지 팔아야 할 가장 반교육적인 상황에 계속해서 내몰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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