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할 곳'에 없다면 어느 정도 불이익이나 불편을 감수하면 된다. 그런데 '없어야 할 곳'에 있다면 문제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뭔가를 치워버리거나 없애야 하는 투쟁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되지않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판에 나도는 조직폭력과의 유착설을 보면 이같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주는 단순한 교훈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조폭(組暴)이라면 유흥업소나 관광호텔 카지노.고리대금업.혼탁한 선거판에 어울리는 용어다. 그렇지 않으면 요즘 젊은이들의 세속탈피적 우상 숭배 대상이거나 극장가 간판 제목으로 제격이다. 그런데 이것이 현직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층과 깊숙이 손을 잡고있다는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있으니 분명 '없어야 할 곳'에 잘못 똬리를 틀고 앉은 게 틀림없다. 없어야 할 곳에 있다면 의학적으로는 바로 암세포가 아닌가. 절단(切斷)의 아픔을 겪어야 함은 태생적 운명이다.
그러나 정치판에 나타난 조폭은 정권이 바뀌거나 범죄와의 전쟁 선포 등 인위적인 방법으로 치유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것이 경제에까지 침투하면 국기(國基)를 흔드는 문제로 비약된다. 한번 형성된 경제 패러다임은 힘으로 뜯어고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없어야 할 곳'에 똬리 튼 조폭
경제에서는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행동하는 자를 '경제 깡패'라고 한다. 따라서 '경제 조폭'은 집단적이면서 지속적으로 시장원리를 짓밟고 다니는 무리쯤으로 해석하면 된다. 경제 깡패는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지하 경제의 속성상 필요악(必要惡)이나 무임 승차자(free-rider)로 치부할 수있지만 경제 조폭으로 성장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암세포의 확대 재생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근절하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정치 조폭보다 경제 조폭들의 행동이 더욱 염려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권력과 밀착, 거액의 관급공사를 따내려는 사람은 전형적인 경제 조폭이다. 돈에 욕심은 나고 경쟁에서 이길 자신은 없으니 권력이라도 이용하겠다는 위험한 게임을 하는 부류들이다. 깡패와 달리 조폭은 이용하려는 사람의 약점을 정확히 잡아내는 지능을 갖고 있다. '덫'에 걸린 권력층은 어느새 조폭의 '얼굴 없는' 두목이 된다. 두목이 살아있는 한 조폭은 와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폭을 뿌리 뽑으려면 두목부터 제거해야 한다. 경제 조폭 일망타진이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제 유가가 9월초에 비해 30%나 떨어졌는데도 국내 기름값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것도 경제 조폭들 때문이다. 오를때는 득달같이 올렸다가 떨어질때는 꽁무니를 빼는 비열한 수법으로 부당 이득을 챙기는 조폭 그룹이 개입하고 있음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다만 그 조폭 두목을 제거하지 못하는 국가권력의 무능함에 분통을 터뜨릴 뿐이다.
30만이 넘는 청년 실업자에다 중산층의 생활고는 하루가 다르게 무게를 더하고 있는데도 경제가 곧 나아진다고 장담하는 관료도 넓게 보면 경제 조폭이다. 장밋빛 수사(修辭)가 여러차례 빗나갔음이 검증됐는 데도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 별로 없는 내년에는 틀림없이 좋아질 것이라는 '늑대 소년'식 발언은 언어의 폭력이다. 관료들이 왜 그런 얘기를 해야하고 주변 관료들은 왜 또 거기에 맞장구를 쳐야하는 지를 국민들이 더 잘 알고있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정치.경제 망치고 국기까지 흔들어
소득과 재산이 상당하면서도 소득세와 재산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 소득이 있으면서도 건강보험을 한푼도 내지않는 65만명의 무임 승차자들, 공적자금을 자기네들 잔치판에다 쏟아 부은 모럴 해저드의 앞잡이들, 이를 보고도 자금회수에 고민하기는 커녕 같이 즐기려는 동조자들. 어떻게 이 모든 경제 폭력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가. 이런 불량배들은 무엇을 믿고 이처럼 기세등등한가. 도대체 그 두목은 누구인가.
정치가 일국(一國)의 외모라면 경제는 심장에서 뿜어나온 동맥이다. 동맥이 힘차게 뛰기위해서는 먼저 혈관내 혈류를 방해하는 요인부터 없애야 한다. 그러나 경제 조폭들의 전리품(戰利品) 잔치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윤주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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