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사극 '여인천하'의 클라이맥스는 문정왕후의 오라비 윤원형이 뇌물수수.역모죄로 몰려 피투성이가 되고, 그녀마저 폐위의 위기에 몰리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요즘으로 치면 정현준이나 진승현으로부터 뇌물먹은 조정대신들의 명단이 빼곡히 적힌 치부책(置簿冊)으로 정치판의 대역전극을 노리는 중전.
마침내 이 치부책을 받아쥔 중종은 편전에서 벌벌떨고 앉은 대신들에게 흥분해서 고래고함을 친다. "그래, 이 조정에 모두가 도적놈들만 있단 말이오!" 문자 좀쓰면 조정도처유도적(朝廷到處有盜賊)이다. 그러나 중종은 뇌물대신들로 하여금 치부책속의 각자 이름을 찢어내 불태우게 함으로써 조정의 파탄을 막는 지혜를 발휘한다.
구한말 충남 공주 갑부 김갑순의 출세기를 다룬 드라마 역시 당시의 부패상을 조명한다. 공주감영의 미관말직, 요즘 치면 9급서기보에서 출발해 친일행적과 함께 부동산.운수사업 등으로 만석꾼에 이른 그의 드라마속의 인생일언(一言)도 일본말로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였다.
최근 참여연대가 정보 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직무관련 향응.전별금.명절선물 금지 등 '공직자 10계명'으로 징계받은 간부 공무원이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우리 공직자들이 옷로비사건 이후 갑자기 청렴결백해졌나 싶었더니 졸속규정으로 유야무야 된 덕분이라니 더 할말이 없다.
국내정치권이 온통 무슨 '게이트'로 시끄럽다. 여론의 표현을 빌리면 국정원의 2차장(경제담당)-당시 경제국장-당시 경제과장으로 이어지는 소위 '국정원 3총사'의 금융비리개입 의혹이 그것이다. 검찰도 세계평화(?)를 위해서 덮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국민들도 차라리 "그만 됐다 됐어!" 하고 중종처럼 덮고싶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최근의 한 조사결과 초중고생의 절반이 '지금 이 땅엔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다. 청소년의 절반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며,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있다. 또 절반이 "정직하면 살기 힘들다"고 주저없이 답하고 있다. 사회전반에 만연된 '모럴해저드'의 문제가 이렇게까지 깊숙이, 아래로 아래로 번지고 있음이 안타깝다. 부디 '제4게이트'의 뚜껑은 영원히 열리지 않기를.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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