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은 공통적이다. 서양적 가치건 동양적 가치건 인류에게 참된 것은 살아 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퇴화하게 마련이다. 토마스 쿤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수반한다'고 했지만, 이 시대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오직 변하는 것만이 영원한 진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진리(眞理)'란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실제가 밝혀지고 드러남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진리는 '모든 것을 그 목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적 지혜의 원형'이라고 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치관과 의식의 근저에는 선과 악,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자신의 이익·편의·쾌락 등에 둠으로써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규범인 진리를 밀어내거나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는 경향이 짙다는 데 문제가 있다. 목전의 이익만 염두에 둔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가 진리를 왜곡하고 오도하는 혼미가 거듭되고 있어 새삼 진리에 대한 회의를 하게 한다.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국내의 철학자들이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철학연구회가 오는 17일 건국대에서 '탈근대성, 그 도전과 응전'이란 주제로 갖는 이 학술발표회는 형이상학을 위시한 전통철학, 해체주의 등 현대철학을 전공하는 철학자들이 함께 참여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이 시도는 철학계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큰 과제이면서 혼미에 빠진 이 시대의 '화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회의는 이미 고대부터 있어 왔다. 고대의 회의주의, 근세의 경험론, 근세 이후의 낭만주의, 20세기 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20세기 말의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제기돼온 문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은 서양철학사를 뒤흔들 만큼 강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철학계는 '유행'이나 '문화 현상' 쯤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으며, 우리 철학계는 불투명한 자세를 취해온 것도 사실이다.
후기산업사회·정보화사회로 일컬어지는 오늘의 우리 사회는 '가짜가 진짜를 지배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가치관의 혼란이 심각하기 이를 데 없다. 한쪽이 이렇다고 주장하면 다른 한쪽은 그게 아니라고 서로가 서로를 탓하며 공방을 벌이는 '언어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이번 철학자들의 모임이 어떤 성과와 연결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진리'에 대한 새삼스러운 물음이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화두'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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