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줄기 노봉산(갈방산)을 진산으로 천석산이 좌청룡, 만석산이 우백호 형상을 이룬 데 자리한 봉화군 물야면 오록1리 창마[倉村].
마을 우백호에 속한 봉황산. 상서로운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깃든다 해서 마을 이름을 오록(梧麓)이라 하고 곳곳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1700년대 구휼미 저장고가 생긴 후부터 창마로 불리고 있다.
이 마을은 풍산 김씨 시조인 문적의 18세 손으로 풍수지리에 밝았던 노봉 김정 선생이 서벽 등을 둘러 본 뒤 숙종 22년(1696)에 터를 잡았다.
선생은 마을을 이룬뒤 내청룡 빈곳 어귀에 터를 닦고 남은 돌로 석축을 쌓아 그 앞에 성황당을 짓고 서편에 짐대라는 장승을 세웠다.
노봉은 고조부인 유연당공의 자제중 둘째 망와 영조, 셋째 장암 창조, 여섯째 학사 응조공의 자손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세거하였다.
이 마을 풍산김씨 문중에서는 조선말까지 과거 대·소과에 70여명의 인물이 배출됐다. 특히 정조 철종 순조때에는 취헌 종태, 동소 중하, 오촌 규윤 등 세사람이 참판으로 동시에 재직하여 세칭 옥당(玉堂)마을로 영남에 그 명성이 높았다.
이를 입증하듯 창마에는 마을 초입을 솟대거리로 부른다. 과거급제의 경사가 있을때 마다 마을 어귀에 솟대를 세워 축하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곳과 마을안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감나무 은행나무 등이 즐비하다. 지금도 물야초등학교에서 마을쪽으로 120m나 이어진 솔 숲은 주민들의 자랑거리요 긍지다.오록의 송림 얘기는 여럿 전해진다. 제주목사를 지낸 김정이 영조 12년 천석산 좌청룡의 꼬리가 짧아 이를 부수키 위해 제주서 가져와 뿌린 솔씨가 자란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 김정이 제주에 사천서당을 세우고 화북포구를 축제하는 등 선정을 베풀다 그곳에서 영면하자 주민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고향에 솔씨를 보내 일궜다는 구전도 있다.
이 송림은 이렇듯이 제주와 인연을 맺은 지 260년이 지난 지금도 양 지역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하고있다.
지난 1996년 12월 제주도 문태수 정무부지사를 비롯한 제주도민과 노봉의 후손들이 창마에 노봉 추모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갖는 등 옛 연을 근세에도 끈끈히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창마에서는 마을 단위로는 드물게 망와 학사 노봉선생을 불천위 제사로 모신다. 장암정(만축정)과 노봉정사, 화수정사 등과 고색창연한 10여채의 기와집들이 사람 키 높이의 돌담장과 어우러져 지난 풍상을 대변이라도 하듯 마을을 지켜서 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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