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 이모저모

입력 2001-11-08 14:38:00

대구 100명, 경북 105명… 올 수능에서 390점 이상 최상위권에 든 지역 수험생 수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숫자는 올 수능시험 4교시를 모두 마치지 못한 채 고사장을 뛰쳐나간 수험생들이다.

특히 1교시 언어영역은 올해 수험생들에게 '죽음의 코스'나 마찬가지였다. 대구 52명, 경북 54명 등 중도포기자의 절반이 넘는 수험생들이 1교시를 마치자마자 손을 들었다. 왜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일까?

◇울음 터져나온 수능 고사장

여학생들이 시험을 치른 고사장 곳곳에선 1교시 시험이 끝나자마자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도시락 가방을 둘러맨 채 고사장을 빠져나가는 학생들도 속출했다. 1교시뿐이 아니었다. 수험생들은 매교시 시험이 끝날 때마다 삼삼오오 모여 "왜 이렇게 문제가 어려운거냐" "나만 망친거냐 아니면 다 마찬가지냐"며 당황해 했다.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미처 다 적지 못한 일부 학생들은 고사 본부까지 찾아 가 울며 "1분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평소 모의고사 380점을 맞는 재수생 최모(19)양은 "상상도 못했던 문제들이 많이 출제됐다"며, "어느 수능 준비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 수 있겠느냐"고 혀를 내둘렀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은 한번 더 당혹감을 맛봤다. 가채점을 끝낸 학생들은 일부 방송에서 섣불리 발표한 '대입 잣대'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서울지역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했으나 잣대에 따르면 지방 중위권에 겨우 턱걸이할 정도였던 것. 그러나 이후 입시 전문기관들이 수능 점수 하락폭을 50점 안팎으로 예상하면서 다소 안도하기도 했다.

◇수험생 당황케 한 낯선 문제들

올해 수능에선 평소 수험생들이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 또는 이색 소재를 등장시킨 문제가 많았다. 지문이 길어져 가뜩이나 시간에 쫓긴 수험생들이 색다른 유형 때문에 또한번 허둥거려야 했던 것. 영화나 스포츠중계 등을 소재로 한 문제나 기상도·지도·사진·그림 등 시각 자료를 제시하고 이를 분석하라는 문제들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언어 영역 경우 듣기 1번 문항은 번역된 문학작품의 국어 오용문제를 비판하는 학생들의 대화내용을 제시하면서 유사한 잘못을 저지른 보기를 고르도록 해 최근 신세대들의 잘못된 우리말 사용 실태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수험생들이 당황하기 시작한 것은 듣기 2번부터. 절의 지도를 보여주고 관광안내원 안내 멘트를 들려준 뒤 한 시간 뒤 만날 장소를 물었다. 유사한 유형을 풀어본 적이 없는 수험생들은 우왕좌왕했다.

이태준의 '복덕방'에서 발췌한 지문을 희곡으로 각색할 경우 독백으로 처리할 부분을 묻거나, 이범선의 '오발탄'을 시나리오로 각색한 지문을 제시한 후 감독이 연기자들에게 주문할 사항을 묻는 등 문학작품에 대한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문제도 눈에 띄었다.

수리영역의 경우 인문계 7번 문항은 기존 유형과 달리 주어진 값을 함수에 대입해 상수를 구하도록 요구했고, 12번 수열은 무리수의 소수부분만 먼저 제시한 뒤 수열의 규칙성을 찾도록 요구하는 고난도 문제였다.

사회·과학탐구 영역 중 인문계 73번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투표율을 나타내는 만화와 그래프를 곁들여 현대정치 과정의 특징을 물었다. 72번은 테러에 대한 두 사람의 논쟁을 담은 지문을 제시해 시사성을 가미했다.

◇학원강사도 혀 내두른 난이도

입시학원 강사들도 예년보다 훨씬 까다롭게 출제된 수능에 당황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매시간 시험문제를 입수, 난이도와 수험생 성적 예상치 등 각종 분석자료를 발표한 입시기관 관계자들은 "작년보다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 정확한 분석을 내놓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때문에 작년까지 영역별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각종 분석자료를 내놓던 학원들이 이번엔 1~2시간이 지난 뒤에야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언어영역 분석 발표는 시험이 끝난 뒤 1~2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나왔고, 수리와 사회·탐구영역 분석도 2시간 넘게 걸렸다. 언어영역의 경우 작년보다 8~10점 떨어질 것이라며 서둘러 예상했던 학원들은 뒤늦게 하락폭을 17~20점으로 2배 이상 높이기도 했다.

수능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보다 세밀한 분석자료를 발표하려는 학원간 '눈치작전'도 더욱 치열해졌다. 작년 수능에서 실제 결과와 동떨어진 결과를 내놨다가 낭패를 본 일부 학원들은 올해 자료를 발표하기 전 다른 학원들의 분석자료를 구하기 위해 수험생 못지않은 눈치작전을 펴, 각 학원 입시관계자들은 분석자료 발표 전에 다른 학원측과 수시로 휴대폰 연락을 하며 난이도 발표 수위를 조절하기도 했다.

한 입시기관 관계자는 "작년의 쉬운 수능에 길들여진 수험생들이 대체로 쉽게 공부해 온데다 변별력을 높인다며 갑작스레 난이도를 너무 높여 학생들이 받는 충격파는 상상보다 훨씬 더 컸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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