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병현 드라마'

입력 2001-11-06 15:36:00

"지옥에서 천당으로 간 기분이었어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와 뉴욕 양키스의 2001년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는 각본없는 세기의 드라마였고 그 드라마를 드라마답게 한 현장의 중심에는 한국의 김병현이 있었다. 그는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월드시리즈 무대에 선 4차전에서 팀이 3대1로 앞선 8회말 등판했으나 동점홈런과 역전 홈런을 연이어 허용, 패전의 멍에를 썼다. 악몽은 여기서 그치치 않았다. 그는 5차전에서도 2대0으로 앞선 9회말 등판했지만 2점짜리 홈런을 허용한 뒤 한 이닝을 넘기지 못한 채 강판, 결국 패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망연자실한 채 마운드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김병현에 TV를 시청하던 한국의 팬들도 한동안 말을 잊은채 넋을 잃었다. 22세의 젊은 한국 청년이 미국의 중심인 뉴욕에서 그 순간 안고 있었을 감당하기 힘든 참담함의 무게를 같이 했고 이것은 동정과 격려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같은 동정과 격려는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 언론에서는 "전도유망한 22세 청년의 앞날이 걱정된다"며 그가 받을 충격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백스의 감독.동료.팬들의 태도 또한 너무나 따뜻하고 성숙했다.

▲그가 4차전과 5차전에서 다 이긴 경기를 홈런으로 날려버렸을 때도 동료들은 그를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그를 감쌌다. 참담한 마음으로 마운드에 주저앉은 김병현을 일으켜 세운 마크 그레이스와 포수 로드 바라하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우리 팀의 마무리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그 몫은 BK의 것"이라며 재기용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브렌리 감독의 의연함은 우리를 감격시키기에 충분했다. 팬들의 성숙된 의식은 또 어떤가. 6차전 종반에 접어들었을때 관중석에서는 "김병현을 내보내라"는 함성이 메아리치는 등 시민들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어찌보면 다이아몬드 백스의 진정한 승리에는 공동 MVP가 된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과 타 선수에 못지않게 김병현의 몫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팀의 막내인 김병현의 아픔을 달래려는 마음에서 우승에 대한 열망과 의지로 똘똘 뭉치고 승화시켜 결국 마지막 7차전 9회의 대역전극을 가능하게 한게 아닐까. 결국 신의 주사위는 포스트시즌 6승 무패 24세이브로 불세출의 구원투수인 양키스의 리베라를 무너뜨리며 '양키스 왕조'의 몰락쪽으로 던져졌던 것이다. 김병현이 우승후 팀동료와 주위의 격려에 고마움을 표하며 '우리'를 느꼈다고 고백한 것처럼 그가 인간적 성숙으로 충격을 딛고 더욱 훌륭한 선수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김병현 파이팅.

신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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