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하는 오후

입력 2001-10-29 00:00:00

어머니, 당신께서 다시 나에게 오십니다.

어디서든 가슴을 열어 마른 목을 적셔 주고

어디서든 자궁을 열어 나를 쉬게 합니다.

내게는 아직도 서른 다섯인 어머니

가물거리는 당신 얼굴 못 알아볼까 봐

마음으로 가슴으로 이렇게 내게 오십니다.

아픈 머리에 손을 얹어 주시고

힘들게 산 인생 등 두드려 주시며

그래도 꿈 버리지 않고 살았구나 쓰다듬어 주십니다.

어머니, 당신께서 다시 나에게 오십니다.

그 먼 곳, 그 나라에선 건강하시지요.

지금 내 곁에 와 있는 당신의 모습 보면 알아요.

친구처럼 동생처럼 연인처럼

나에게 생명과 사랑과 그리움을 가르치는

당신의 손길이 따뜻한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도 친구처럼 누나처럼 연인처럼 더러

함께 술도 한 잔 하고요 응석도 부리고요

서른 아홉 까실한 수염으로 젖무덤도 부비고 싶어요.

-안상학 '어머니'

'어머니'는 아마 우리 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이고 '사모곡'은 가장 흔한 주제일 것이다. 그만큼 '어머니'라는 말에는 원초적 슬픔이 배어 있는 지 모른다. 더욱이 망자인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그리움은 더욱 절절할 것이다.

이 시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슬픔이 배어 있다. 서른 다섯에 고인이 된 어머니보다 이제 나이가 더 들어 서른 아홉이 된 시인이 까실한 수염으로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은 이 애절한 마음을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차마 알고나 계실까?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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