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마을 뒤 연못에서 엄마가 숨진 채 발견됐어도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어요. 앞을 못보는 아버지와 둘이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청도군 이서면 이서고교 2년 이재덕(17)양은 지금도 어렵지만 참 힘든 길을 걸어왔다. 맹인인 아버지의 눈과 발은 물론 말벗도 해야하고 학교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양의 지난 길을 돌아보면 정말 눈시울을 적시게하는 한 편의 드라마같다.
이양의 아버지인 이영대(59)씨는 3세때 우연한 병으로 실명한 뒤 40세때 인근 교회에서 정신요양 하던 부인 서모(당시 37세)씨를 만나 이양을 낳았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 어머니가 갓난애기를 잘 돌보지 못하자 앞을 못보는 아버지가 손수 더듬거리며 우유를 데워 먹이는 등 이양은 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평소 집안을 잘 돌보던 어머니는 봄, 가을 계절이 바뀔 때면 아무 말없이 열흘이나 보름동안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4년전 봄 집을 나간 것이 마지막이 됐다. "돌아가신 엄마는 비록 정신이 온전치 못했으나 미인이셨고, 말없이 조용히 책을 보는 성격으로 언제나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셨다"고 기억하는 이양은 엄마 제삿날이면 직접 제사음식을 마련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안 살림살이는 이양 차지가 됐다. 가장이 된 이양은 스스로 "절대 약해지거나 울면 안된다"고 다짐하며 어려운 일이나 슬픈일이 생겨도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아이로 변했다.
일찍 시련을 겪고, 견디고, 이겨내고 있는 이양은 참 구김살없이 자랐다.
지난해 수학여행때는 친구들이 도와주며 함께 가지고 했으나 혼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 제사 준비로 못갔다. 또 집이 워낙 골짜기에 있어 오전 7시 마을 앞에 오는 버스를 놓치면 50여분을 걸어 나가 버스를 타야한다. 마지막 수업이 오후 5시40분에 끝나지만 마을버스 막차는 4시30분이어서 마지막 한시간 수업을 포기하거나 또 50여분을 걸어야하는 등 속상한 일도 많다.
하지만 심성이 곧은 아이답게 이양은 늘 밝고 쾌활한 모습으로 친구들과 어울리고 '착한 학생'으로 소문이 나있다.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받지 못해 초.중학교때는 준비물도 제대로 한번 챙겨가지 못했지만 중학교때는 3등으로 입학하고 3등으로 졸업하는 등 줄곳 장학생이었다.
그동안 학교와 관공서에서 받은 선행.효행상이 7, 8개나 된다.
칠곡초교때 두차례 선행상을 비롯, 중학교때는 청도군 교원단체 연합회장 표창장과 학교장의 효행상, 지난해에는 경파장학회의 표창과 학교 효행상, 지난 5월엔 (사)대한사립중고교장회에서 효행상도 받았다.
살림은 면에서 주는 생계보조비 30여만원과 아버지에게 지급되는 장애자 수당 6만원으로 충당한다. 그러다보니 이양의 한 달 용돈은 2만~3만원이 못돼 저절로 짠순이가 됐다. 그런 이양에게 요즘 큰 즐거움이 하나 생겼다. 다음달 8일 아버지와 함께 인천에 갈 일이 생겨,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구경 기대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인천에 가는 일은,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아 온 이양에 대한 사회의 작은 보답이다전국에 13개의 병원을 갖고 있는 인천 길병원의 (재)가천문화재단(이사장 이길녀)이 이양을 제3회 심청효행상 수상자로 선정했기 때문.
"사관학교에 가거나 간호사도 되고 싶고 또 선생님도 되고 싶다"는 이양.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정성껏 모시며 야무지게 살아가는 이양의 꿈은 틀림없이 이뤼질 것으로 믿어졌다. 청도.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