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띄우는 편지-글자 한자한자 보낸 이의 체온이…

입력 2001-10-17 14:33:00

"그러고 보니 그동안 아내는 한번도 자기의 양말을 신어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중략)…. 내일은 아내를 위해 예쁜 숙녀용 양말 한 켤레를 사야겠습니다". 〈권오욱(대구시 동구 지묘동)씨가 아내를 위해 쓴 편지 중〉

"당신은 언제나 내마음 빈터에 들어올 수 있고, 난 당신 없인 가슴시려 이 세상을 살 수 없으니…(중략) 난 지금 당신께로 갑니다. 당신 좋아하는 연양갱 서너개 사들고 급히 당신께로 갑니다". 〈김명수씨가 아내에게 쓴 편지 중〉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시죠. 정말로 사랑해요. 돈도 없는데 막 사달라고 했던 것 죄송해요. 외상으로 사서 주신 아버지, 정말 눈물이 납니다". 〈인터넷 편지 사이트에서 아이디 '송슬아'씨가 돌아가신 아버지께 보낸 편지 중〉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이 가을 소중한 사람,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자.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노랫말에도 그렇지만 가을은 어쩐지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사랑을 고백할 때, 멀리 떨어진 가족과 친구가 문득 그리워질 때, 시련을 겪는 사람에게 용기를 줄 때 한 통의 편지는 수백 수천마디의 말보다 더 큰 위력을 갖는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대중화되면서 편지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개인 간에 주고받은 사신(私信)이 전체 우편물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88년 24.2%에서 지난해엔 21.3%로 줄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휴대전화 한 통이면 육성(심지어는 화상까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디지털 정보화시대에 편지는 점점 더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바쁘게 사는 요즘 사람들은 편지를 써서 우표를 사서 붙이고 이를 다시 우체통에 넣기까지의 '노동'이 불필요한 행위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직장이나 집에서 집배원이 전하는 편지 한 통을 받아 본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일까. 보내는 사람의 마음과 손 끝에 뭍어난 체온을 느끼게 하루가 즐거울 것이다.

주부 김정희(32·대구시 남구 대명동)씨는 "아이 때문에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해 대신 편지를 한 달에 2~3번씩 주고 받는다"며 "편지를 쓰면 전화로 못할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고, 편지를 기다리는 설렘은 생활의 활력이 된다"고 말했다. 장문의 편지가 아니라도 좋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 친구끼리 짧은 편지나 쪽지를 주고 받는다면 서로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생활에 작은 변화가 생겨난다디지털 시대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한편에서 아날로그식으로 편지를 쓰자는 운동이 시작되는 것은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

최근 대구의 한 방송이 기획한 편지 프로그램이 한국방송대상을 받았고 대구시여성단체협의회나 일부 기업들은 편지쓰기 공모전을 열어 호응을 얻고 있다.

육필(肉筆)은 아니지만 인터넷에는 전자우편(e메일)과 별도로 네티즌들을 위한 편지쓰기 사이트도 생겨났다.

편지종합사이트(http://epts.co.kr), 그리운닷컴(lovepeople.pe.ky), 스카이레더(http://skyletter.wo.to/) 등에는 공개편지 사이트, 인터넷 상에 편지를 쓰면 이를 대신 우편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