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함께 미래를 향해'. 퇴계 이황(李滉.1501-1570) 탄신 500주년을 기념해 12, 13일 이틀간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는 현대 물질만능주의 환경과 정신적 황폐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퇴계사상과 한국유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 윤리적, 도덕적으로 해이해진 당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안동대 퇴계학연구소(소장 이해영)와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심우영)이 주관한 이번 학술대회에는 퇴계학 연구에 있어 세계적 석학인 마이클 칼튼(미국 워싱턴대 교수), 마르티나 도이힐러(영국 런던대 교수), 장립문(중국 인민대 교수), 이우성(퇴계학 연구원장), 사토 고우에츠(일본 츠쿠바대 교수) 등 11개국 56명의 학자들이 참석해 퇴계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등 유학 관련 최대 규모의 학술대회로 자리매김될 전망. 특히 체코, 베트남, 노르웨이, 페루 등 유학.퇴계학 등 동양학 연구 열기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발제자와 토론자로 참석, 새로운 시각에서 유교의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다.
주제발표에서 금장태 서울대 교수, 장립문 교수, 사또 교수 등이 한국, 중국, 일본의 유교 전개에 대해서 주제발표를 하였고, 이광호 연세대 교수, 김종석 경북대 퇴계연구소 연구원 등이 퇴계의 생애와 삶, 퇴계와 학문세계 등의 논문을 통해 퇴계의 학문, 사상, 인간관 등을 조명했다.
참여 학자들은 "퇴계 사상이 생명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우리 마음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고 주장했고, 유교가 민족통일 후에 우리 민족의 보편적 가치로 가능하다는 근거를 찾기도 했다.
한편 대회 기간동안 안동지역 전통 종가에서 숙식을 함께하는 종가체험행사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으며, 20여개국 80여명의 참가하는 '국제청년유교포럼'도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다.
이번 포럼에는 한국에 유학온 외국인 대학생, 대학원생들 중 한국유교에 관심이 많거나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참여해 유교와 미래정신문화의 흐름에 대해 토론한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퇴계의 당시 시대관과 제세(濟世)이념'
李佑成(퇴계학연구원장)
16세기 당시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학자, 사상가로서 퇴계가 세상을 어떻게 보았고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기로 하였으며 나라의 장래에 대하여 어떠한 기대와 희망을 가졌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존재 의의를 어떻게 느끼고 있었던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시도다.
오늘의 일반지식인 특히 젊은 세대에 속한 사람들은 퇴계하면 공자.주자와 함께 우리 동양의 옛 성현의 한 분이라고만 알고 있는 동시에 오직 숭고한 도학자로서 벼슬을 마다하고 산림(山林)에 은거하면서 길이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친 분이지만 지금 우리네의 생활과 관계지워 생각할 수는 없는 분이라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사대부로서의 퇴계의 기본입장은 민생문제를 보는 시각에서 잘 드러난다. 이념의 바탕 위에서 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현명한 지성과 아울러 일념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다. 또 주체적 외교나 병적(兵籍) 조사와 민생의 실태에 관한 견해 등 퇴계의 여러 주장이 당시 임금과 정부에 의해 하나하나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지만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선생의 참다운 충정과 심각한 현실인식을 토대로 한 그의 고언(苦言)은 길이 후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다음으로 퇴계의 환산(還山)과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에 주목해야 한다. 퇴계는 사대부로서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에 성의를 다하면서도 매양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원했고 결국 산림(山林)으로 돌아온다. 이 부분은 무엇보다 선생의 당시 시대관과 그 시대에 대해서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알아야 한다. 퇴계는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여 우리나라를 '동로(東魯)'라고 불렀다. '동방의 노(魯)나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동로'라고 불렀던 선생의 의식 속에서는 그의 문명지향적 의욕에 의한 조국의 이상국화(理想國化)에의 추구가 뿌리깊이 작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퇴계의 역사적 자각은 그의 시국관-시대관과 표리(表裏)가 되는 것이다. 선생은 당시의 세상을 '말세'라고 표현했지만 이 말세는 영구 말세가 아니고 한 세운(世運)이 끝날 무렵, 즉 시대와 시대의 교체기에 앞시대가 끝날 무렵을 말하는 것이다.
퇴계의 시대, 즉 16세기 초·중엽은 우리나라 정치사·사상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의 시대다. 45세 때 다시 을사사화를 몸소 겪은 선생이 이 시대를 '말세'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이 말세적 현상을 극복하고 새 세운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 사림파로서의 퇴계선생의 신념이었다. 중앙에 있어서의 관학적 아카데미즘의 퇴화와 지방에 있어서의 신진사림파 철학의 대두, 이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며 퇴계의 역사적 위치가 설정될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선생은 여기에서 자기 사명을 알았다. 말세를 극복하고 조국을 이상국화시키려고 한 그의 문명 지향적 의욕은, 그러나 성급한 미봉책으로서가 아니고 근본적 방책으로서 인심의 개선 즉 정신풍토의 시정 작업에 착수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림파 철학-성리학의 올바른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퇴계선생에게 있어서 성리학은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수양을 통한 참다운 인간 형성의 학문이었다. 선생이 지방에서 전력을 다해 서원 창설운동을 벌이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듯이 보였던 퇴계가 이상하리만큼 서원 창설운동에 사회적·문화적 관심을 집중시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퇴계의 서원 교육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일까? 사림정치는 퇴계선생의 이러한 교육운동에 의해 배출된 인재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의 관직을 버리고 지방 향리로 물러난 것을 명철보신(明哲保身)이라는 소극적 인생관으로 평가하는 잘못된 인식과는 달리, 사림파 철학의 완성에 의한 관학적 아카데미즘의 지양, 새로운 교육운동에 의한 정치 에너지의 개발 등으로 새 세운을 맞이하려는 그의 적극적 가치 창조의 생애를 우리는 사려깊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16세기 당시의 사회풍토는 어둡고 부조리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다가 임금의 형식적 예우와 정부 관료들의 역량으로 보아 이러한 기성 세력들과 정치를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한 퇴계는 지방에 내려와 새로운 인재 육성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조국의 미래에 대한 많은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었다.
'퇴계와 21세기 희망'
마이클 칼튼(美 워싱턴대 교수)
지난 1998년 한국에서 새로운 성리학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새로운 성리학이란 주희나 퇴계 같은 사람들의 옛 성리학의 지혜와 이해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21세기의 용어와 개념을 사용할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21세기의 문제와 관심사를 다룰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먼저 21세기의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새로운 성리학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21세기의 중심 문제가 우리의 커다란 두 체제(system)의 만남이라고 믿고 있다. 첫 번째 커다란 체제는 '환경'이다. 옛 성리학은 이것을 끊임없이 만물을 낳고 만물에게 생명을 주는 천지(天地), 그리고 천지지심(天地之心)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또 하나의 커다란 체제는 인간에게 생명과도 같은 부(富)를 끊임없이 낳고 또 줄 것을 약속하는 놀라운 자본주의 체제다.
전 세계 정부들은 현재 이 두 번째 커다란 체제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화와 자유시장에 대해 끊임없이 듣고 있다. 문제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인간이 만든 이 체제가 천지 체제로부터 생명을 고갈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다 많은 부와 행복을 얻기 위해 지구를 변모시켜가고 있는 동안, 대략 한 시간마다 하나의 종(種)이 영원히 멸종해 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 문제는 광범위한 대중들의 주의를 끌기 시작했다. 경제와 환경의 이러한 문제가 틀림없이 21세기 중심 문제로 인식될 것이다. 그래서 21세기의 문제는 현재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실천적인 단계'이다.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 있는 생활 방식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두 번째 단계는 '정치사회적인 단계'이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변화를 실제로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이 단계에서 우리는 상당한 장벽에 부딪치고 있는 것 같다. 세 번째 단계의 문제가 생겨난다. 우리가 조만간 변화될 수 있을까? 인간성에 대한 희망이 실제 있는가, 아니면 천지의 생명력이 우리의 체제 속에 더 이상 흐르지 않을 때까지 맹목적으로 이기주의를 추구할 것인가?
새로운 성리학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할 것인가? 이제 이(理)와 기(氣),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히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놓고 사고와 분석을 할 때, 전통적 성리학 용어가 다른 어느 용어보다도 더 예리하고 강력한 도구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의 성리학은 사칠론(四七論)에서 그 질문을 비길 데 없는 강도와 깊이로 연구했다. 주희와 퇴계가 생명이 우리 마음의 생명력 속에 흐르고 있으며, 만물의 생명을 지탱하는 관심으로 나타난다고 말한 것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성리학은 이 모든 것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퇴계의 상황 분석은 일반적인 현대 어휘가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미묘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성리학의 개념이 현대에 와서 사라짐을 아쉬워하고 있다.
성리학은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가치관이 여러분의 행동을 이끌어 주는 힘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을 개인에게 던진다. 이제 우리는 그 질문을 전 세계의 문화에 던진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인심의 원동력이 현대 소비자 문화에 구현되어 있다. 그리고 도심의 원동력이 생태계를 관류하며 우리 마음 속에 나타나서 많은 생명들이 위협을 받는 것을 보고 측은지심으로 반응한다. 사칠론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더 커졌을 뿐이다.
나는 성리학 특히 퇴계가 우리의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준 데 대하여 감사한다. 그리고 성리학과 퇴계가 지구상의 현재 생명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우리 마음 속에서 실제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 데 대하여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요약 '사이버 세상의 공자'
李光炯(KAIST 미래산업 석좌교수)
21세기가 되면서 인간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정보혁명이 일기 시작했다. 그 동안 인간이 생각하고 즐기고 거래하는 생활공간은 지구상의 물리적인 공간에 국한되어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도구의 발달로 인간의 생활공간은 가상의 세계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컴퓨터가 생산하고 전달하는 정보는 현대사회의 핵심 요소가 되어, 21세기를 정보사회 또는 지식사회라 부르게 되었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컴퓨터와 통신장비가 가져온 사이버세계이다. 인터넷이 만드는 가상의 세계는 실로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세상이 되고 있다. 인터넷 속에서는 거리가 없다. 한국에 있으면서도 전 세계의 어느 사람과도 채팅이 가능하고, 어떤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널려있다.
이런 변화는 과거 인류 역사상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이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는 과거 농경사회를 산업사회로 바꾸었던 산업혁명과도 견줄 수 있는 문명사적인 변혁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이런 인류사의 제5의 혁명기에 알맞은 사회규범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전혀 경험해 보지 않는 사이버세계 속의 '옳고 그름'과 질서의 확립이 절실하게 되었다.
중국 고대의 위대한 사상가인 공자는 인류사에서 보면 앞서 지적한 사상혁명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유학은 춘추시대의 혼란한 사회 속에서 공자에 의해 태동되었던 사상으로서, 그 후 시대 상황의 변천에 따라 그 시대의 요구에 맞게 이론을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중국 전통 사상의 주류를 이루었다. 아울러 유학은 중국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 특히 한국과 일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공자의 가르침은 자각에 기초하고 있다. 자각은 바로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서로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서로 상호성을 지닌다. 자신이 남을 사랑하거나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일 모두가 자신의 일이다. 즉 인간의 문제는 인간의 자각을 통해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공자의 사상에 전통적인 신앙의 측면이 엿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자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자각과 자율성에 대한 믿음, 즉 인간의 자주성에 대한 확신에 있다. 미지의 영혼에 관한 것이나 죽음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 어떻게 해야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세워 가는가 하는 문제가 가르침의 중심을 차지하였다.
공자는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그러한 강조는 개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개인의 각성과 실천의 자율성이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구하는 것이라 할 때, 공자가 구하는 사람의 길(求道)이란 바로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된다. 공자는 구도에 대한 정열과 구세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실적 삶의 과정 속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자 모든 사람이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이었다. 이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유학의 기본 가르침이다.
최근에 개척된 신대륙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세계의 발단 과정과 비교해보면 농경시대 이전의 유목사회와 비슷하다. 그 곳에는 집단적으로 모여서 정착해 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중시되지 않고 있다. 언제든지 떠나버리면 끝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아무렇게나 대하고, 지금까지의 나와 전혀 다른 인격체로 가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니 사이버스페이스에는 질서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서도 자취를 감춰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다시 말해서 인간 사이의 끈이 약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죄가 된다는 생각도 별로 안 한다.
오늘 우리가 공자를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2천 500여년전 어지러운 시대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여 살아가는 가르침을 주었던 그 것처럼, 새로이 열린 사이버세계에서도 이런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유학은 죽음 이후의 영혼을 말하는 것보다 현실세계에서의 실천적인 도덕과 윤리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오늘 더욱 간절하게 필요한 것이다.
'인'과 '예'가 자리잡고 질서가 확립되면 혼동된 가치관이 바로 설 것이다. 이런 것들은 끊임없는 가르침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막 개척된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지속적으로 교육을 하면 윤리관이 확립될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상과 벌이 병행되어야 효과적이다. 그래서 국가는 개인의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고, 잘못된 것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도 가지고 있어야겠다. 그러면 공자가 꿈꾸던 도덕국가를 사이버세계에서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요약 '퇴계교육관의 현대적 의의'
히키다 게이유(疋田啓佑.일본 후쿠오카여대 교수)
오늘날 일본교육에는 학력붕괴, 학급붕괴나 학력저하, 교내폭력이라는 현상이 심각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문이나 교육에 관해 고민을 하던 중에 읽게 된 것이 바로 퇴계 선생의 '四學의 師生을 깨우치는 글'이었는데 이를 통해 실로 깨닫는 바가 많았다. 이 글에는 학교 교육에 관한 퇴계의 견해들이 비교적 잘 나타나 있다.
학교라는 것은 풍속교화의 근원이자 사회의 규범이 되는 것을 확립하는 장소이며, 이곳에서 유생들은 예의를 근본으로 삼아 수양을 한다. 그리고 국가는 학교를 설립하여 유생들을 양성하기 때문에 그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생들은 스스로 수양을 함으로써 경박하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취할 염려도 전혀 없다. 또한 선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禮와 義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즉 스승은 학생을 엄격하게 대하며, 학생은 존경심을 갖고 스승을 대할 때야말로 각자의 올바른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리키는 엄격함이란 학생을 호되게 나무라는 것이 아니며, 또 존경심이란 학생의 비굴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禮(사회적 규범)에 바탕 하여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원인은 '가르치는 선생에게 원인이 있다' 즉 선생이 된 사람들이 교사라는 직무 수행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퇴계가 지적하고 있는 내용은 오늘날 일본이 떠 안고 있는 교육문제와 너무나 흡사하다. 그런데 우리들 선생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그 책임을 학생들이나 사회로 떠넘기려고 한다. 퇴계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배우지 않으면 금수(禽獸)와 다름없다. 따라서 인륜을 명확히 밝히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뜻을 세운 선비라면 이를 한탄하여 책을 갖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인륜을 명확히 밝히고 후세를 위한 서원을 만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결국 퇴계는 주자의 '白鹿洞規'를 본받아 오륜에 바탕 하여 궁리독행(窮理篤行)의 학문으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퇴계는 유학이란,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오르기 시작해야 하며, 먼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한 걸음을 내딛지 않고는 높은 곳에 오를 수 없듯이, 세상 모든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한다. 즉 학문을 한다는 것은 인륜을 명확히 밝히기 위함이며, 白鹿洞學規에 나와 있듯이 '窮理力行'을 수행한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오륜에 바탕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窮理의 요점이 되는 것은 博學·審問·愼思·明辯이라고 퇴계는 제시하고 있다.
퇴계의 학문은 평소 자신의 행동 속에서의 수양이며, 누구나 쉬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힘든 것이 아니며, 누구나 행해야 하는 것을 행하며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을 수행해야한다는 뜻이다. 퇴계 교육관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인륜의 도(道)와 이를 지탱하는 예(禮)이다. 그리고 학생은 뜻을 세워 이를 날마다 실천해 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일상의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해 온 내용들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며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좀처럼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선생을 떠올리면서 용기를 내어 실천해 가야 할 것이다.
요약 '유가사상과 가정윤리'
천치즈(陳啓智.중국 산동사회과학원 유학연구소 소장)
현대화의 급격한 발전은 현대사회와 모든 가정생활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많은 새로운 문제와 도전을 내놓고 사람들의 대응과 해답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동서양이 직면한 문제가 모두 같지는 않지만, 어떻게 문명의 부정적 현상에 대응하여야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의 안정을 해치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질화.물질화된 발전동향을 전환하게 해야하는가 하는 점에서 오히려 동.서양사회 모두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가정은 사회조직의 기본세포이고 사회를 응집시키는 활력의 원천이다. 현대유럽과 미국이 직면한 심각한 가정의 해체나 비정상적인 가정 등의 문제는 모두 가정윤리를 도외시함으로 조성된 사회문제였다. 따라서 가정윤리는 큰 효과를 지닌 보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서방의 국가들이 이미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난 뒤 전통적인 가정모델로의 복귀를 시도하고 있지만, 윤리관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사회문제는 여전히 계속 발생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풍조가 동아시아로 밀려 온 경험과 그에 따른 이론의 추진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바야흐로 사라져 가는 퇴조임에도 동아시아에서는 이제 막 유행하려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서방의 개방에 대하여 일찌감치 모든 정신적 울타리를 없앴기 때문에 다만 그 기초와 속도에서 비교적 조금 늦을 뿐이다. 만약 능히 구미에서 발생했던 경험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면 우리들은 곧 반드시 자신들의 울타리를 보수하여 다시 새롭게 윤리의 강령을 세워야 한다. 동양사회의 각종 혼란을 정리하거나 방지하고, 구미의 각종 사회병태를 피하거나 치료하여야 한다.
크게 오늘날 동서양의 세계를 보면 그 공통적인 특징과 경향은 곧 '질서의 상실'이라 할 수 있다. 상하·좌우·전후의 관계가 모두 전도되거나 무시되는 위험에 처해있고, 신앙의 상실, 가치의 전도는 도덕윤리관념의 붕괴를 가져왔다. 그 원인은 대체로 서양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방사회는 원래부터 도덕의 역량에 대하여 그렇게 큰 믿음을 가지지 않았고, 사회의 발전운용은 주로 법률과 제도의 보호에 의존하였다. 그들이 받드는 개인주의는 당연히 우리들이 예전에 비판했던 것과 달리 自私.自利.自我를 지상으로 여기는 것이었고, 개인을 본위로 하여 관리를 지향하는 기제라고 하겠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경제의 발달, 문화적 번영 등은 모두 이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지금 각 나라의 문화는 서로 다른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유가윤리는 종교배경이 없어서 다른 종교와 충돌이 생기지 않는다. 시급히 유가윤리를 문화정신으로 앙양하고 아울러 종교적 마음을 함께 포용해야한다. 유학이 비록 종교는 아니지만 일정한 종교성을 갖고 있어서 종교처럼 인심을 정화하고 인심을 모으고 인생을 미화하는 작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각 종교와 평등하면서도 공개적인 대화를 나눔으로서 각 종교.문화간의 조화를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 '퇴계사상과 도덕사회'
' 人欲存天理'의 현대적 의의
安炳周(성균관대 명예교수)
인심의 황폐와 자연의 오염과 윤리의 타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팽만해 있는 지금 우리 시대의 도덕사회를 지향함에 있어 퇴계 사상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퇴계의 心學과 정치사상의 '키워드'가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한다고 하는 ' 人欲存天理'라는 문장에 함축돼 있다.
퇴계는 '思'와 '學'의 겸비를 강조하였다. 그는 '聖門의 學은 이것을 마음에 구하지 아니하면 혼미하여 얻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사고를 하여 그 은미한 뜻에 통하여야 한다. 그 사실을 학습하지 아니하면 위태롭게 되어 편안하지 않다. 그러므로 반드시 학문을 하여 그것을 실천하여야 한다. 思와 學은 서로서로 계발하고 서로서로 도움 주는 것이다. 持敬이란 또 思와 學을 겸하고, 動과 靜을 꿰뚫고, 內와 外를 합하고, 顯과 微를 하나로 하는 道이다.'고 말했다.
陽明心學과 구별하기 위해 퇴계 心學은 敬心學·持敬心學이라고도 하는데 퇴계 心學에 있어 사고한다는 것은 마음에 구하는 것(求諸心)이고, 敬(持敬)은 思와 學을 겸전(兼全)하는 것이었다. ' 人欲存天理'는 송(宋)대 신유학의 윤리사상체계에 있어서 기본명제의 하나이며 퇴계의 학문과 사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본명제의 하나이다. 실로 퇴계 心學과 퇴계의 정치사상에 있어서 키워드는 ' 人欲存天理'이다.
도덕적 우환의식의 기초 위에서 유교가 제시하는 덕목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敬'을 들 수 있는데 퇴계는 이 '敬'의 철학의 재집대성자로서의 높은 평가를 국내외의 학자들로부터 받고 있다.
퇴계 心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치(개혁) 주체의 자격을 논하고 있는 퇴계의 정치사상의 키워드도 ' 人欲存天理'의 6字임이 여기에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개혁의 필요성이 자각되거나 제기되어 있지 않은 조건 아래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먼저 깨닫고 그것을 주장하는 개혁주의가 갖는 사상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급변하는 정치적·경제적·국제적 조건의 변동기에는 특히 그 정치·경제 및 국가방위 담당 주체들의 '마음가짐'이 그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상층부로부터 말단조직에 이르기까지 관료기구의 '부패' 같은 것도 개혁의 성공을 방해하는 중대한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러한 때 정치의 큰 근본을 학문과 도덕의 성취에 두고 정치 주체의 자격을 논하고 있는 퇴계의 정치사상과 그 心學은 우리가 반드시 재조명해야만 하는 사상으로서의 현대적 의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요약 '퇴계학의 역사적 위상'
설석규(경북대 퇴계연구소)
16세기 사림의 理氣心性論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戚臣세력의 독점적 권력체제에서 빚어지고 있던 정치적 혼란과 사회.경제적 피폐에 따른 국가부도 사태를 극복함과 동시에 성리학적 질서확립을 위한 개혁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필요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기심성론은 朱子의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었으나, 그들의 현실인식과 대응자세의 차이로 인해 해석상에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림들은 독자적으로 확립한 이기심성론을 토대로 각각 그들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한편 현실대응 방향을 설정했다. 퇴계학파를 비롯한 남명학파, 율곡학파가 학풍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出處觀이나 정치운영론에 있어 차별적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사림의 세계관 형성과 관련한 이기심성론은 理의 작용성 여부와 理.氣의 관련성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퇴계는 四端.七情을 '理發', '氣發'로 分開하는 남명의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사단을 '理發氣隨', 七情을 '氣發理乘'이라 하여 상호 따르고 올라 탄 渾淪의 관계로 보았다. 조식의 분대론과 이황의 수승론은 남명학파와 퇴계학파의 차별적 성향을 반영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기는 했지만, 도덕적 가치의 절대성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사림세력의 이러한 시각차가 결과적으로 선조대 이래 그들이 학파를 매개로 붕당체제를 구축한 가운데 상호 대립하게 되는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척신정치의 잔재청산과 척신의 정치개입에 대한 견해차가 대두한 것을 계기로 그들 학파의 세계관에 입각한 정치질서의 수립을 위해 붕당체제를 구축한 가운데 상호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는 퇴계학파는 척신정치의 청산을 통한 도덕적 사회구현이라는 점에 남명학파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퇴계학파가 수승론을 근간으로 동.서인 가운데 군자를 발탁하여 공존과 견제를 지향하는 調劑蕩平論을 제시한 것을 계기로 남명학파와 결별하여 南人.北人으로 분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퇴계학파에 의해 제시된 調劑蕩平論은 이분법적 논리로 상대당을 용납하지 않는 남명학파의 군자소인론이 갖는 배타성과, 화합을 명분으로 모순된 현실과의 타협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율곡학파의 보합론이 지닌 이중성의 한계를 동시에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그것은 상대당의 존재가치를 보장하면서도 是非의 분별을 통해 군자로 인정된 인물을 선별하여 발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붕당의 대립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黨禍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세력의 독주를 막고 합리적 방법으로 도덕적 가치가 지배하는 정치.사회구조를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李滉의 理氣隨乘論의 세계관에 연원하는 退溪學의 명실상부한 역사적 위상이 찾아진다고 하겠다.
13일 대회일정
09:30-18:00
제3부 현대사회와 유교사상
유교사상과 여성(이주향):토론 노인숙 프란시코 까란사
유교의례와 생활문화(정경주):토론 문지성 유녕
유교사상과 가족(천치즈):토론 최진덕 응엔문홍
유교의 공사관과 공공윤리(박충석):토론 정일균 시래진유언
유교공동체와 지방자치(김석근):토론 마르티나 도이힐러 김안제
민족통일과 유교사상(김성기):토론 이군 이봉규
제4부 미래사회와 유교사상(사회 이기동)
정보화 사회와 유교사상(이광형)
민주주의의 미래와 유교사상(로스너)
21세기 경제윤리와 유교사상(진순진)
퇴계사상과 도덕사회(안병주)
-종합토론 유탁일 류인희 이승환 띠호노프 허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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