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쟁국.적성국에도 러브 콜

입력 2001-10-10 14:55:00

9.11테러참사와 미국의 테러응징으로 국제사회는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미국은 테러참사 이전 '불량국가'의 대량살상무기에 대처하기 위한 미사일 방어(MD) 체제 구축과 중국에 대한 군사전략적 견제에 주안점을 둔 외교정책을 펴왔으나 이제는 보복전쟁과 추가 테러 방지를 위한 다자간의 예방외교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또 이슬람 국가들도 테러응징에 대한 지지와 반대입장이 엇갈리는 등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세계 각국들이 동맹여부를 놓고 짝짓기와 반목을 거듭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보복공격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은 물론 파키스탄.시리아.인도 등 사실상 적성국에게 까지 '구애의 손길'을 펴고 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16일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된 국가들과도 테러근절을 위한 공조체제 구축 가능성을 모색해 볼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미국이 반테러를 명분으로 사실상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 수단, 시리아로부터 이미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조직 알 카에다에 관한 정보를 얻어냈고 이란과 북한에도 추파를 보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대테러 전쟁으로 이제 '밀월관계'에 접어들었으며 정찰기 사건과 대만무기판매 등으로 껄끄러운 미-중 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기지사용과 영공 통과 허용 등 군사적 협력을 보내자 그동안 비난해왔던 체첸 인권에 침묵하는 것도 모자라 체첸 반군들에게 러시아의 평화안을 수락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핵실험 등으로 제재를 당했던 파키스탄도 테러보복에 협조하자 제재를 일시에 해제한 것은 물론 앞으로 경제지원을 확대할 전망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테러사건 직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한 뒤 테러 정보공유를 촉구했다.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한걸음 나아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이 점차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이후 미국은 그간 각국의 비난에도 불구, 계속 체납해왔던 유엔 분담금 5억8천2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한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중동협상의 중재에도 새삼 열을 올리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안'을 검토해보겠다며 친이스라엘 편향정책에 대한 변화의지를 밝혔다. 또 러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데 이어 앞으로 발칸반도 철군,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탈퇴, MD체제 구축 등 분쟁의 소지가 많은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훨씬 신중한 입장을 취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은 기후협약에 관한 교토의정서 비준 거부와 중동개입 기피 등 국익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하고 지역 갈등에 대한 개입을 기파하는 '고립주의적 외교 노선'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오로지 테러 전쟁만 남기고 모든 분쟁을 정리하겠다는 미국의 전방위 외교는 향후 국제질서의 재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공격으로 이슬람권은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다. 파키스탄은 반미시위로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다. 파키스탄내 700여개 이슬람 급진단체들이 12일 전국적 봉기계획을 세우는 등 내전양상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일고 있다. 이슬람 종가인 사우디아리비아는 아랍국가중 처음으로 미국의 아프간 공습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또 이집트와 요르단 등 온건 아랍국들과 이라크, 리비아 등은 테러규탄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아프간 군사공격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장기화될 경우 온건.과격 이슬람권의 반미 결속을 부채질할 우려가 높다.

류승완기자 ryusw@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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