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치료시설 '어르신마을'노인들

입력 2001-10-06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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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모를 집에 두고 모셔야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가정이 노부모를 봉양할만한 여력을 급속도로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매 등 몸상태가 나빠진 노인들을 모시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유료노인요양시설로 쏠리고 있다. 선진국에선 이미 일상화된 곳 '실버 타운(Silver Town)'. 고령화사회로 이미 진입한 우리나라도 이젠 '낯선단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있다.

하지만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를 어떻게 시설에…". 갈등하는 자식들이 적잖다. 대구지역 첫사례이자 유일한 유료요양시설로 꼽히는 '어르신마을(대구시 중구 대봉동·421-7977)'. 이 곳 노인들의 삶과 그들을 맡긴 자식들의 사연을 들여다봤다◇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지난 99년 5월 문을 연 '어르신마을'엔 모두 32명의 노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개소당시 6명으로 시작했지만 불과 몇달만에 정원을 채웠고 현재 20여명의 대기자가 입소를 기다리고 있을 만큼 관심이 늘고 있다.

이 곳의 노인들 대다수가 노인성 질환의 대명사로 꼽히는 치매와 중풍을 앓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곳 노인들 대다수가 입소전 가정에서의 '갖가지 사연'을 갖고 있다. 밖에 한번 나가면 배회하다 집을 못찾기 일쑤. 파출소에서 전화오는 일은 주중행사다.

자식이고 며느리고 몸은 직장에 있어도 마음은 집에 가 있다. '노부모가 오늘은 또 어떤 일을 벌였을까?'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국 두손을 든 자식들은 시설을 선택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쏟아내는 말은 '안 겪어보면 모른다'는 얘기다.

노인들을 맡긴 자식들 대다수는 맞벌이다. 정확히 비율을 따지면 80%가량. 어차피 제대로 된 봉양을 할 수 없다면 경제적 부담을 지고서라도 시설을 선택한다고 시설행을 결정한 자식들은 얘기한다.

시설이용료는 만만치 않다. 건강이 비교적 괜찮은 노인은 월 89만원, 몸상태가 나쁘면 월 119만원까지 내야 한다. 자식들이 대부분 나눠 낸다.

돈문제 때문에 다투는 가족들도 있지만 이용료를 내지 않거나 미루는 가족들은 없다. 개인 간병인을 들여 하루 6만원씩 지불했다는 한 가족은 '지금이 훨씬 낫다'고 털어놨다.

◇우리도 편해

'어르신마을'의 노인들은 공통적으로 "여기가 편해서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별로 보고싶지 않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딸 셋에 아들 다섯이라는 정순자(83·가명)할머니. 기력이 쇠해 누워만 있었지만 "여기가 괜찮다"를 연발했다. 자식이 많은데 여기 있는 것이 서럽지 않느냐는 물음에 "전혀 그렇지 않다"며 "(자식들이)자주 오니 집에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곳의 노인들은 갈등을 빚기도 하고 남녀간에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은 듯'했다.

윤정순(70·가명)할머니는 "여긴 친구들이 많아서 좋다"며 "집에서 살때는 지겨웠는데 이 곳은 그런 무료함이 없으니 즐겁다"고 웃었다.

가족들이 찾아오면 외출·외박도 가능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 처음 시설에 들어올 때 한없이 울었던 노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얘기한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있고, 정해진 식사와 노인들 개개인의 몸상태에 따른 진단과 치료, 정서적 안정을 유도하기 위한 원예·음악치료 등 특수치료까지. 적지 않은 이용료가 부담이지만 노인들은 일단 외형적으로는 만족한듯했다.

◇잊을 수 없는 가족

노인들은 겉으로 "가족이 별로 보고싶지 않다"고 얘기하지만 은근히 기다린다. 그리고 가족들이 찾아오면 '그동안의 경과'를 쏟아낸다. "약도 못먹었고, 밥도 못먹었고…". 시설 관계자들의 애를 태우고 서운하게 만드는 말이다.

"예전에 집에 있을 때도 이렇게 하셨을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해요. 퇴근한 아들에게 늘어놓던 말씀 그대로죠. 며느리만 나쁜 사람 만드는 거예요. 여기서도 그런 버릇은 고쳐지지 않아요". 시설 관계자들은 이젠 만성이 됐다며 웃는다.

가족들은 자주 찾아온다. 한 입소노인의 가족은 매일 온다.

가족들의 출입이 빈번한 것은 '죄책감'때문이라고 시설 관계자들은 전했다. 입소 노인들 가족의 70% 이상은 집에서 모시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죄스런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자주 찾아오는 가족들 대다수는 딸이다. 그래서 시설관계자들은 '잘 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부럽다'는 말에 공감한다. 딸 다음은 아들, 그리고 발걸음이 제일 더딘 사람은 며느리다.

자식들이 자주 오는 것은 노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르신마을 최명선 간호사는 "대구지역에서만 요양치료가 필요한 노인들의 숫자가 2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며 "운영비에 대한 정부지원이 없어 유료노인시설은 여전히 높은 이용료 때문에 중산층에게는 부담스러운 곳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최 간호사는 "제대로 된 노인요양을 위해서는 시설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노인복지에 대한 정부의 관심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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