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에 쓴 장편소설 '격정시대'를, 그러니까 70세에 쓴 것을 정리하느라고 83세에 다시 읽어보니 어이가 없다 못해 서글픔이 앞설 지경이니, 이를 어쩌랴. 소설인지 르포인지, 아니면 숫제 자료집인지…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다…. 내가 끝내 정복을 못하고 만 정상, 그게 바로 이 망할 놈의 소설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생 역정을 겪은 중국 옌볜의 노작가 김학철(金學鐵.85)씨의 올해 출간된 산문집 '우렁이 속 같은 세상'에 나오는 고백의 한 부분이다.
▲작품 몇 편을 써놓고 대가인양 행세하는 우리 문단의 풍조에 비춰볼 때 이 고백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감동시키는 것은 그가 겪었던 우리 현대사의 뼈 아픔에 대한 증언들과 그 속에서의 올곧은 삶이다. 일제시대 무장 독립부대인 조선의용대의 '마지막 분대장'이었던 그는 항일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목발을 짚고서도 평생을 꼬장꼬장하게 산 항일 투쟁사의 산증인이었기 때문이다.
▲만주 태항산 전투에서 왼쪽 다리를 잃고 일본 형무소에 수감 중 광복을 맞아 귀국했던 그는 그 이듬해 월북, 김일성 정권의 독재에 환멸을 느껴 195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문화혁명의 와중에 '인민이 굶어 죽는데 웬 우상숭배냐'는 등의 비판의 글을 썼다가도 중국의 감옥에서 10년간 옥살이를 했다. 지난 6월에도 서울에 왔던 그의 장편소설 '격정시대' '20세기의 신화' '해란강아 말하라',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등의 저서들이 거의 한국에서 발간됐었다.
▲그가 지난 25일 중국 지린성 옌볜 자택에서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의 외아들은 28일 중국에 묻히고 싶지 않다는 뜻에 따라 27일 화장한 뒤 유골과 평소 쓰던 볼펜, 조선의용대 창건 때 전우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두만강 하류에 떠내려 보냈다고 한다. "조객을 받지 말고, 추도식도 하지 말 것이며, 가장 가슴 아파 할 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말고, 시신은 화장해 '원산행'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두만강에 뿌려 달라"고 한 유언에 따른 것이다.
▲가족에게 피해를 줄까봐 김학철(본명 홍성걸)이란 가명으로 살아 왔던 그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 투쟁, 중국 대륙을 뒤흔든 문화혁명기의 옥살이, 옌볜 동포 사회와 중국 사회주의의 현실 등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글들로 우리를 감동시켜 왔다. 그는 이제 소원대로 고향인 원산으로 돌아가게 된 것일까. 그의 외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것에 도전하라'는 말은 우리를 다시 한번 숙연하게 만든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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