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견예술인 작업현장-존재론 다룬 장면 마무리 몰두

입력 2001-09-26 00:00:00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청산유감'으로 등단한 지역출신 소설가 하창수(42)는 춘천에서 존재와 초월의 문제에 몰두하며 가을을 맞았다. '소란스럽고 척박하기만 했던 서울생활'을 걷어치우고 아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춘천으로 옮겨온 지 9년째.

그는 여기서 전업작가로 살고있다. 생활은 어렵지만 지금 행복하다. 늘 열망했던 '쓰고 싶은 소설'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중반 한때는 '잘 팔리는 소설'을 몇편 써보기도 했지만, 문학성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시도 자체가 한계였다. 오히려 어려운 내용의 '허무총'(虛無塚.1994)이 한동안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작품은 4년 후 원고지 5천매 분량으로 개작, '그들의 나라'(책세상)로 출간할 만큼 주목을 끌었다. "상업성 있는 소설은 작가에게 필요악과 같은 존재임을 새삼 깨달았죠. 그래서 요즘은 판매를 거의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저 쓸 뿐이지요". 그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경험하는 군 입대와 병영생활을 통해 전체주의에 대한 기질적인 거부감과 서정성을 새삼 확인했다. '개인'을 허용하지 않는 '절망의 세월' 을 통해 인간존재와 상황에 대한 내면을 깊이 탐구했다.

하창수는 이처럼 데뷔시절부터 줄곧 천착해온 군대를 소재로 한 소설을 총체적으로 다룬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1990년)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이를 '병사소설'이라 부른다. '끝내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의 쓰라린 기록'을 통해 작가는 어떤 '문학적 행복'을 얻었을까.

1992년에 나온 장편 '젊은날은 없다'(세계사)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를 등장시켜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과 삶의 근원적 조건을 탐색해본 작품이다. 이것 또한 작가가 논산훈련소 시절 직접 목격한 일을 소재로 한 것이다.

하창수 소설의 저변을 흐르는 주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 하나에 수렴된다. 불가해한 삶의 비의(秘意)를 좇아 그 비밀스런 옷을 벗겨내는 일. 그래서 그는 실존주의적 작가라는 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그는 정작 '실존'보다는 '본질'에 천착한다고 말한다.

그의 문장이 소설의 서사적 구조에 어울리는 리얼리즘적이기보다는 사변적이고 관념적이라는 평가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읽기에 버겁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는 문학과 철학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올 벽두 문예중앙 봄호에 경장편 '천국에서 돌아오다'를 발표한 후 쓰기 시작한 장편 '유리장갑' 마무리에 골몰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론을 초월의 문제로 풀어보려는 문학적인 시도이다. 이 가을 춘천에서 무르익을 그의 '신비주의' 소설이 사뭇 궁금하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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