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티리치미르
힌두쿠시 산맥 최고봉 티리치미르(7,690m)는 주봉과 서봉 동봉 북봉 등 4개 연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티리치미르 빙하 분지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이 높이 솟아 있어서 등반시 항상 산사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1950년 7월 노르웨이 등반대가 주봉의 남봉릉을 따라 최초의 등반에 성공했고 67년 체코대와 일본대가 북면으로 각각 제2, 제3의 등정을 기록한 이래 여러 팀이 등정에 성공했다. 한국은 95년 7월 23일 대한산악연맹 경기북부연맹 소속의 김재표 조준용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으나 하산길에 불의의 사고로 영영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산이다.
7월22일 오전 7시. 탐사대는 티리치미르 등반 베이스인 바부캠프를 향해 샤그람 마을을 출발했다. 보리밭과 해바라기가 피어있는 마을을 벗어나자 당나귀길이다. 오른쪽으로 깊게 패인 협곡 너머 힌두쿠시 산맥의 능선이 공룡의 등줄기처럼 날카롭다. 야영장소인 아탁에 왔으나 텐트를 칠 만한 장소가 없다. 점심도 거른 채 계속 전진이다. 서서히 고도가 오르고 대원들의 숨소리도 거칠어 간다. 해발 3천500m.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대는 한낮의 태양아래 허덕이며 또 하나의 고개를 넘고서야 깨끗한 물이 흐르는 쉐니악에서 야영을 할 수 있었다.
24일 아침 텐트를 걷는 와중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포터들이 출발을 만류한다. 바부캠프를 구경도 못하고 귀국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힌두쿠시가 그런 대원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10시쯤 되자 비가 그쳤다. 파랗게 개인 하늘에 감사하며 1시간여 오르자 빙하 퇴석지대가 나온다. 흙과 모래로 뒤덮인 거대한 얼음덩어리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얼음위의 모래가 미끄러지며 몸이 휘청거린다. 모래 빙하가 끝나자 본격 빙하지대다. 빙하 곳곳에 얼음물이 졸졸 흐른다 . 한모금 마시니 속이 확 깨인다. 빙하호에 둥둥 뜬 얼음도 깨물어 먹었다. 왼쪽으로 구름에 쌓인 티리치미르를 감상하며 폭 1m 남짓한 크레바스를 수십개 건넜다.
힌두쿠시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빙하를 건널때만 해도 손이 시려 장갑을 꼈었는데 그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게다가 태양이 내리쬐는 데도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바람에 날린 만년설이 녹아 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날 오전 7시 탐사일정의 최종목표인 바부캠프를 향했다. 시작부터 끝없는 너덜지대다. 돌사태라도 난 듯 크고 작은 바위들이 몇km에 걸쳐 이어진다. 어떤 봉우리는 당장이라도 돌무더기를 쏟아내릴 듯 위태롭다. 발바닥이 욱씬대는 돌길을 5시간30분 걸어서야 바부캠프에 도착했다. 마지막 경사면을 오를 땐 열걸음 걷고는 멈춰 심호흡을 해야 했다. 높이 4천700m의 바부캠프에서 바라본 힌두쿠시 산맥은 지금까지 흘린 땀을 충분히 보상해줄 만큼 아름답다. 티리치미르에서 아폴로(6010m)를 지나 노샥(7492m) 연봉으로 이어지는 눈부신 설벽이 푸른 하늘위로 솟구쳐 있다.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빙하도 은빛 물결로 반짝인다. 누군가 저곳에 신이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감탄한다. 신이 있다면 과연 저 장엄한 하얀 봉우리에서 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욕에 찌든 인간들은 그저 만년설을 우러러볼 뿐이다.
그곳에서 일본인 화가를 만났다. 그는 포터 1명만을 대동한 채 텐트를 치고 티리치미르를 화폭에 옮기고 있었다. 한국에서 등반대가 왔다고 하자 그림에 방해가 되는 듯 텐트를 걷고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바부캠프를 떠나 야영지로 돌아오는 내내 티리치미르의 하얀 설벽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26일 새벽4시. 여명에 밝아오는 만년설을 응시한 채 명상에 잠겼다. 트레킹을 시작한 다르쿳에서부터 12일간의 꿈같은 산행이었다. 아쉽지만 이제 힌두쿠시와 작별할 시간이다.
힌두쿠시 산맥으로 출발하던 첫날 길이 50m 콘크리트 다리가 끊어지는 사고를 겪었는데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가는 길에도 이에 못찮은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샤그람에서 지프로 1시간 정도 달리자 경찰이 차량 통행을 금지시킨다. 산사태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 10분도 안돼 산사태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굉음과 함께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 오르면서 절벽 경사면이 덤프트럭에서 쏟아지는 모래처럼 허물어져 내렸다. 절벽에 간신히 붙어 있던 도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원들은 길없는 산을 타고 넘어 붕괴지역을 벗어나야 했다.
해발 3천m 높이의 나와리 고개를 넘을땐 4번이나 버스를 내려서 밀고 올라가야 했다. 샤그람에서 4일동안 고물차에 시달린 끝에 이슬라마바드로 귀환, 힌두쿠시 트레킹을 무사히 마쳤다.
박헌환기자 pt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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