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면 자꾸 달력을 들쳐보는 사람들이 있다. 9월 30일, 10월 1, 2, 3일. 빨간색 숫자를 보며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명절만 되면 오히려 괴로운 아줌마들이다. 이들은 추석 며칠 전부터 지레 마음이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장보기부터 시작해 추석 전날엔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 전을 부치고 고기를 굽고 당일엔 음식준비에 설거지, 거기다 그 많은 식구들 뒤치다꺼리까지. 괜히 뒹굴뒹굴 한가로운 남편만 얄밉게 보인다.
그러나 추석은 설과 더불어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기회. 힘들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즐겁게 일해보자. 당당하게 일하고 요구할 건 당당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 알고 보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식구들과 친척들간의 정을 더 돈독히 하는 가정도 많다. 이번 추석은 주부들에게도 즐거운 그런 명절을 스스로 만들어보자.
여자들에게 있어 '명절은 노동절'이라는 말은 주로 결혼 10년 안쪽의 주부들에게서 많이 들을 수 있다. 시댁에 가도 서열상 할 일이 제일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석 이래서 싫어요
맞벌이 주부인 이모(35)씨. 매년 맞는 명절이지만 정말 올 추석은 욕을 먹더라도 편해지고 싶다. 시댁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골마을 집성촌. 그러다 보니 명절이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은 추석당일 친정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손님들을 치르다보면 어느새 밤 12시죠. 거기다 남편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 먹기 바빠 여자들이 얼마나 힘드는지 생각도 안해요".
우먼라인(www.womenline.co.kr) 등 여성전용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도 벌써부터 명절 스트레스에 관한 글들이 쏟아진다.
"친정엔 딸만 셋입니다. 혼자되신 엄마, 외롭게 추석아침을 맞이하실 생각에 눈물이 먼저 납니다. 언니들도 서로 괴로우니 말을 안해요. 명절 전날 시댁에 가서 죽도록 일만 하죠. 시어머니는 시누이들이 오면 보고 가라고 합니다. 눈물나는 추석 정말 싫습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명절만 되면 머리가 아픈 건 왜일까요. 시댁엔 며느리가 귀하고 대대로 지내는 제사가 많다보니 설거지만 몇 집을 하는지 몰라요. 식사도 있는 음식에 대충 먹으면 좋겠는데…. 어머님은 아무리 밥이 남아도 끼니마다 밥을 하라 하시죠. 명절이 무서워요".
하지만 과연 명절은 여자들에게 괴롭기만한 날일까. 알고보면 명절이 즐거운 주부들도 많다. 이들에게 명절은 이제 더 이상 일만 하는 날이 아닌 의미있는 날로 다가서고 있다.
김순희(42·대구시 중구 남산동 보성황실아파트)씨에게는 추석이 되면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추석 전날 저녁 시댁에 모여 남녀없이 온 식구가 송편을 빚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추석 당일 남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 청송으로 성묘를 떠나고 나면 동서 세 명만 남는다. 음식준비에 고생했다며 배려해주는 것인지 아니면 여자니까 산소에 오지 말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자유시간. 시댁 욕하기, 남편 욕하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그리고는 셋이서 다정하게 노래방에서 노래도 불러보고 볼링장에서 몸도 풀어보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추석 이래서 좋아요
3년 전부터 최성욱(33·대구시 북구 침산동)씨에게 추석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명절 다음날이면 성주군 수륜면의 친정에 1남5녀의 온 식구가 모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밤샘고스톱에 아침이면 온천행, 여느 다른 집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자들은 중학교 2학년부터 네 살까지의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답사를 떠난다. 아이들과 밤·대추를 따기도 하고 좁은 논두렁길을 걷기도 하며 자연학습 기회로 삼는다.
"집 근처에 있는 신라시대의 탑, 폐교를 활용한 버섯 재배지 등을 찾아갑니다. 대도시에서만 자라온 아이들에겐 시골이 여러가지로 산 교육장이 되죠. 이젠 저나 아이들에겐 추석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날이 됐습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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