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딸 둔 26세 이진석씨

입력 2001-09-24 14:19:00

이진석씨는 유치원 다니는 여섯 살짜리 딸을 둔 가장이다. 스물여섯 살, 아직 학생 티가 묻어나는 얼굴에 여섯 살 난 딸까지 두었다면 사람들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의 조혼은 장남이라서가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돈벌러 갔던 서울의 한 주점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두 사람은 결혼했고 곧이어 아이가 태어났다.

가출 청소년들은 저마다 한두가지씩 사연을 이름표처럼 달고 있기 마련이다. 이진석씨의 고등학교 중퇴와 가출에도 사연은 있었다. 그는 가출 학생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게 고등학교 시절엔 학급 반장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오랜 투병 생활과 누나들이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만큼 지긋지긋했던 가난, 언제나 조용해야 했던 비좁은 집과 서로에게 방해가 된다고 여겼던 가족, 선생님의 '이유 없는' 폭력, 친한 친구의 가난과 심장병… 등 사춘기 소년이 견디기 힘든 일이 끝없이 이어졌다.

'집안을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서울로 떠나면서 이진석씨가 남긴 쪽지엔 그렇게 적혀있었다.

그가 아내와 함께 대구의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고통만 겪고 떠나신 것이다. 뒤이어 어머니마저 사고로 가족과 이별하고 말았다. 어머니의 사고엔 자식들의 부담을 덜겠다는 눈물겨운 뜻이 숨겨져 있었다.

이진석씨는 밤엔 웨이터로 나이트클럽에서 일했고 낮에는 공부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자격증을 땄고 전문대학까지 졸업했다. 23세땐 군입대를 해야했기에 아내와 딸을 서울 친정으로 보내야 했다. 제대 후 가족은 다시 대구로 내려왔고 그는 지금까지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오후 4시에 집을 나서 새벽 3시가 넘어야 돌아온다. 나이트클럽에 손님이 줄어드는 여름철엔 트럭에 해삼, 신발, 김밥, 냉커피를 싣고 다니며 판다. 때로는 배추장사, 보험설계사, 어묵장수로 가족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가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고집하는 것은 하루 빨리 가난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아내는 적더라도 남편이 고정된 월급을 받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진석씨는 똑같은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가 되고 싶지 않다. 사업자금도, 별 학력도 없는 사람이 돈을 버는데는 나이트클럽 웨이터만한 직업도 없다고 이진석씨는 믿고 있다. 기분 좋게 술이 오른 손님은 팁을 덥석 쥐어 주기도 한다. 10원도 벌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운수좋은 날은 30만원을 벌기도 한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언젠가는 사장이 되고 말 것이라며 이를 악문다.

이진석씨는 무뚝뚝한 표정에 말수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에서 그를 만난 지인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친절하고 싹싹한 말투, 잠시도 눈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 연신 허리를 숙여대는 '마음에 쏙 드는' 웨이터로 변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식의 삶은 부모에 의해 대부분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유난히 공부를 잘했던 누나가 꿈을 펴지 못하고 현재의 처지에 머물고만데도 오래 아팠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믿는다. 유전처럼 이어지는 가난을 끊어버리겠다며 이진석씨는 오늘도 큰 소리로 외친다. "어서 옵쇼!"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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