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1-09-24 00:00:00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산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시적 화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향에 간다. 산등성이에 올라 저 아래로 보이는 동네를 보니 제삿날인 큰집에는 벌써 불빛이 훤하다. 서편 하늘에는 채 놀이 지지도 않았는데.

제삿날 큰집에 모인 불빛과 놀에 물든 붉은 가을강이 대비되면서 객지에서 고달프고 서러웠던 삶에 눈물이 난다. 산골에서 실패한 첫사랑도, 그 다음 사랑도 그를 울게 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가을강은 무심히 흘러간다. 마치 세월처럼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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