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영화 애기섬 파문

입력 2001-09-19 14:31:00

'경찰이 쳐들어 오고 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시 신월동 국군 제 14연대. 늦가을의 어둠이 깔린 오후 8시쯤 연병장에서는 고함소리가 적막을 갈랐다. 연대 인사계 상사의 목소리였다. '경찰을 타도하자. 조선인민군이 남조선 해방을 위해 38선을 넘어 남진 중에 있다' 그의 선동에 장병들은 '옳소'를 연발했다. 반대한 하사관 3명은 즉석에서 사살됐다. 2천500여명의 병력은 순식간에 무장하고 시내로 뛰쳐나갔다. 여순(麗順)반란사건은 이렇게 일어났다.

이 같이 14연대가 반란사건의 진원지가 될 수 있었던 건 병력의 절반 이상이 좌파였기 때문이다. 당세포 40여명 등이 무기고를 미리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 여수를 점령한 반군은 경찰·국군·지주·우익 인사들을 처형했고, 순천에 이어 광양·곡성·구례·고흥 등도 장악했다. 27일에야 여수를 탈환함으로써 이 사건은 진압됐으나 2년 뒤 한국전쟁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던 셈이다.

이 엄청난 사건의 실체를 왜곡한 영화 '애기섬' 제작에 국방부가 헬기·트럭·소총·군복 등을 지원했다니 기가 찬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의 승인을 받은 뒤에 상영한다는 조건으로 지원했는데 영화사가 계약을 어겼다'고 변명하고 있으나 말이나 되는 소린가. 이 영화의 내용이 반공주의 국가를 만든다는 미명 아래 이승만 정부가 수없이 많은 민간인의 죽음을 요구한 사건으로 규정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얘기인가.

한나라당은 최근 권철현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여순반란사건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집은 이 영화 제작 지원과 각종 안보 해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동신 국방장관이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나섰지만, 국가의 안보와 국방을 책임져야 할 국방부가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는 또 이 사실을 모 월간지가 잘못 보도했다며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방침이라니 한심할 따름이다.

영화 '애기섬'의 내용에 따르자면 이 반란사건을 진압한 군인들을 양민 학살자로, 반란 지도자를 국가 유공자로 판정해야 옳다는 얘기가 아닌가. 현 정권의 역사관과 안보관의 혼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는 주적(主敵) 개념 논란 등으로 군 안팎에서 안보를 걱정하는 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으며, 국민의 불안감도 가중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펼수록 군의 기강은 추상 같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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