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국의 위대한 시민 정신

입력 2001-09-18 00:00:00

온 미국을 뒤덮고 있는 엄청난 충격 속에서도 미국민들이 침착하고 차분하게 질서를 잃지 않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이고 있었다.

교회, 카페, 공공기관 등 도시 곳곳에는 추모행렬이 연일 이어지고 있고, 참사 현장인 맨해튼 세계무역센터에는 헌혈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처럼 단일민족도 아닌, 다인종국가에서, 평시에는 인종간 이질성과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사회에서, 돌연 국가적 위기가 닥친 지금, '너', '나', '흑백'은 사라지고 '우리'라는 신념아래 똘똘 뭉치고 있다.

대참사후 3일이 지난 14일 오후 7시무렵(미국시간)뉴욕 교외의 한 카페에서는 요란스러운 복장을 한 20대 젊은이 2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흑백구분없이 촛불을 켜놓고, 추모 노래를 조용히 부르고 있었다.

뉴욕시에는 수천명의 주 경찰이 강력한 치안을 펴고 있고, 버스, 지하철 등 각종 교통수단이 통제당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침착하고 질서정연하게 비상상황에 잘 따르고 있었다. '우리가 당황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의 말은 시민들의 정서를 대변해주고 있다. 혼란을 틈탄 어떤 범죄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시민들은 서서히 슬픔을 딛고 평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메이저리그, 미식축구, 프로농구 등 스포츠도 월요일부터 일제히 재개한다고 한다. 하버드대학 동북아연구소장 에카르트 교수는 "이번 가슴아픈 사건이 정치.군사.경제적 세계제패의 기회가 되기보다는 테러리즘과 대량살상행위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인류역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되기를 바라는 게 미국민들의 참된 정서"라고 평가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시민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이 상처를 '누구에게 무엇으로' 응징하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지 않기를 바라는 여론이 일고 있다. 시민들은 부시정부의 성급함보다는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의 사태수습 노력과 행정력, 그리고 치안유지및 시민 정서안정에 쏟는 열정에 더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지금 뉴욕에는 잃어버린 사랑과 상처받은 미국의 자존심을 달래며 꿋꿋한 재기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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