半전시.半평시체제 공존전통적 전쟁론 다시 써야
미국은 인류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전쟁을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직면하고 있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를 '전혀 다른 적을 상대로 한 전혀 다른 전쟁'이라며 미국이 직면한 '21세기 첫 전쟁'이라 불렀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USA 투데이, ABC, NBC, CNN 등 미 주요 언론들은 미국을 겨냥한 동시다발 테러공격을 '화요일의 테러 대참사' '테러대전' '전쟁행위''새로운 전쟁' '얼굴없는 전쟁' '회색전쟁' 등 신조어까지 사용하며 시대변화에 따른 전쟁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다.
국제법상 전쟁은 군사력에 의한 국가상호간 또는 국가와 교전단체 간의 투쟁행위를 일컫는다.
물론 전쟁은 당대의 국제사회 또는 국내정정의 군사.정치.사회적 구조를 반영하는 총체적 현상이기 때문에 시대변화와 함께 그 성격을 달리한다고 전쟁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워싱턴, 뉴욕 등 미 주요도시를 집중 공격한 이번 테러세력을 전통적인 전쟁개념에 준하는 교전단체로 볼 수 있을지 속단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충격적인 기습 테러공격을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미국을 겨냥한 테러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정권에 대한 개전을 선포했다.
미국은 개전 선포와 군사력 동원, 최후 통첩 등 개전을 위한 수순을 단계별로 밟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 일본 등 유럽과 아시아지역 우방과 동맹국들을 포함, 러시아와 중국 등 비동맹국조차도 미국의 이같은 '개전 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이로써 미국은 지난 전쟁사에 전례가 없는 '새로운 전쟁'개념을 도입한 셈이다.새 전쟁의 가장 큰 특성은 전쟁개시가 적대국이나 교전단체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 얼굴없는 테러단체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반격대상의 실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동시에 전쟁이 국가나 교전단체의 정규군이나 게릴라를 상대로 한 게 아니고 특정 테러단체를 발본색원하고 이를 비호하는 세력이나 정권을 응징하는 데 군사정치적 목표를 두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공격이 시작되기 전 미 군사 최고지휘부가 이번 전쟁이 '장기전'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는 사실에서도 이번 전쟁이 어떠한 형태로 이어질지 짐작케 한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전쟁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것임을 거듭 천명하고 있으며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이번 전쟁이 '수일 내' 끝나지 않고 '수년'이 걸릴 것이라며 장기전을 선언했다.
반격이 시작도 되기 전에 지구전을 예고한 것도 이례적이다.
특히 초강대국 미국이 대적하는 전쟁대상을 뒤에서 지원하거나 지지하는 연합차원의 국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도 과거 전쟁과 다른 점이다.
미국은 비정규부대인 특수부대요원을 파키스탄에 투입해 이번 테러주범으로 규정한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색출작전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에 제일 먼저 동원된 부대가 정규군이 아닌 특수부대병력이라는 사실도 과거 전쟁과 구별되는 대목이다.
미국은 지상군과 함대 병력, 함포지원과 전투기 공습 등 육.해.공군을 동원해 총력전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부시 대통령은 에비군 소집령까지 동원해 준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도 국민에게는 테러세력의 추가 테러를 경계하되 17일부터 일상생활에 전념해 가급적이면 평시에 준하는 정상활동을 재개토록 당부했다.
군 비상태세와 민간 평시체제가 공존하는 미묘한 '반(半)전시-반(半)평시체제'가 가동되고 있는 셈이다.
미군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면 21세기 새 전쟁의 새로운 전투양상이 점차 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의 테러대전 시작과 함께 역사가들은 전쟁사와 전쟁론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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