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인파 봇물 사고 잇따라

입력 2001-09-17 12:20:00

추석을 2주일 앞둔 16일 경북지역은 추석을 능가하는 차량 흐름을 보이면서 곳곳에서 벌초 대회라도 여는 듯한 풍경이 연출됐다. 사고도 잇따라 최소 수백명이 병원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대단한 하루 = 공원묘원 4개가 밀집한 경산 남천면 일대에는 각 묘원마다 500~600명의 벌초객과 차량들로 남천~청도 사이 국도가 밤늦게까지 몸살을 앓았다. 10여분 걸리던 남천∼경상병원 구간 통과엔 1시간이나 걸릴 정도. 경산공원묘원 측은 "이날 하루 성묘객이 500여명에 이르렀다"고 했다.

남양.우성공원 등이 있는 성주~대구 사이 30번 국도도 새벽부터 체증을 일으켰다. 선남면 남양공원 이재방(59) 상무는 "이날 300여명의 성묘객이 다녀갔다"고 했다.

울릉읍 도동 배석오(43)씨는 "일가 친척 모두가 육지로 이사해 혼자서 고조.증조부 등 조상 묘소 8기를 벌초해야 해 바쁘다"고 했다. 김춘지(60.천부3리)씨 일행은 "예초기로 조상들을 놀라게 해서 될지 모르겠다"고 꺼림칙해 했다.

거창 위천면 모동리 마을에서 벌초하던 김동환(36·거창읍)씨는 "16일을 벌초의 날로 전했는지 사람들이 모두 벌초 나가 마을 전체가 텅 빈 것 같다"고 했다.

◇산골 도로도 정체 = 벌초 차량들로 문경의 산골 도로들도 큰 혼잡을 빚었다. 곳곳에서 벌초 기계 소리가 요란했던 청도에서도 팔조령 고갯길 도로변이 차량들로 메워져 통행이 지장을 받았다.

3천여명이 관광을 즐긴 울릉에서도 벌초가 한창이었다. 이곳에는 마을 단위 산간지 공동묘지가 주류여서 이날 섬 차량의 절반인 1천여대가 태하.석포.저동.도동리 공동묘지로 몰려 심한 체증을 일으켰다.

의성의 주요 도로도 새벽부터 붐비기 시작, 안평 등 야산 입구는 차량들로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청송에서는 대구.부산 등에서 귀성한 차량 행렬로 주요 국도.지방도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무서운 벌떼 = 이날 벌초객의 최대 공포의 대상은 벌떼였다. 각 병원들의 응급실도 벌 피해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성주 여모(33·벽진면)씨는 얼굴.몸 등 수십군데를 쏘여 호흡곤란.구토 증세를 보여 병원 신세를 졌고, 성주세강병원 응급실 의사 김기태(35)씨는 "오늘 하루만도 벌 피해자 50~60명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안동 경우 안동병원에 김모(여.61)씨 등 5명, 성소병원에 신모(43)씨 등 8명이 찾아 쇼크로 인한 심한 두통과 고열을 호소했다.

군위에서는 박병욱(64.대구 이천동)씨와 아들(37)이 말벌 수백 마리의 공격을 받았으며, 박씨는 "30여m나 도망갔으나 벌이 따라왔다"고 했다. 군위 삼성병원에서는 환자들 옷 속에 숨어 따라 왔던 벌이 응급실에 출현, 큰 소동이 일기도 했고, 다른 지역 읍면단위 병의원에들도 보통 휴일엔 문 닫던 것과 달리 이날은 문을 열기도 했다.

문경 제일병원에서는 채홍문(63)씨 등 15명이 치료 받았다. 상주에서는 박용우(42. 대전)씨 등 16명이나 병원으로 옮겨졌고, 포항에서는 차모(45.서울)씨 등 5명이 선린병원.동국대병원을 찾았으며, 거창에서도 최광식(49)씨 등 10명이 치료 받았다.

의성에서는 장모(41·의성읍)씨 등 12명이 치료받았고, 청송읍 황은구(50)씨는 벌에 쏘인 뒤 정신을 잃었다가 3시간만에 정신을 차렸다. 울산에서 청도로 귀향해 벌초하던 예성해(56)씨 역시 4시간만에 의식을 회복했으며, 청도읍 거연리에서 벌초하던 김한규(46.부산)씨도 혈압 급강하 등 쇼크증세를 보였다가 4시간여만에야 회복했다.

청도의 유일한 중규모 병원인 대남병원 응급실은 벌초 응급환자로 만원을 이뤘다. 토.일요일 이틀간 들른 환자만도 35명이나 된 것. 청도 소방파출소도 바빠져 16일 하룻동안 박상우(33.대구 불로동)씨 등 4명을 긴급 후송했다.

◇또다른 사고들 = 청도에서는 김종석(43.김해)씨 등 2명이 사고로 119 신세를 졌으며 성주세강병원 응급실엔 벌 환자 50~60명 외에 예초기 사고 환자도 3명이나 찾았다. 안동병원에도 3명이 손.발을 다쳐 찾았고, 군위 삼성병원 응급실에선 예초기에 튕긴 돌에 다친 강모(여.48.대구 파동)씨 등 3명이 치료 받았다.

16일 오후엔 친척들고 함께 벌초길에 나섰던 구인자(여.46.안동 신세동)씨가 길을 잃어 수색작업이 벌어졌다.

◇주의할 점 = 군위 삼성병원 노승균(40) 병원장은 "술 마신 후 벌에 쏘이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또 "벌초 시기에 한시적으로라도 아빌택샤 근육주사용 키트 같은 비상의약품을 일반 약국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고 환자.가족들은 "벌초는 절대 1∼2명만 가서는 안된다"고 경험담을 얘기했다. 벌떼 등의 피해가 생길 경우 후송이 불가능, 119등의 도움을 받기 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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