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공예 전수 송영주 할머니
입술에는 미소, 가슴에는 사랑, 두 손에는 노동!
전국 소년체전 구호같은 이 말은 75세의 송영주 할머니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기실 그의 삶은 소년체전에 나가 달리는 어린 선수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나이를 생각하면마땅히 '할머니' 라고 말을 꺼내야겠지만 그 앞에 서면 좀처럼 '할머니'라는 말을 쓰기 어렵다. 얼굴과 목소리는 갓 60세를 넘긴 사람 같고 그 움직임은 에너지로 출렁대는 소년같기 때문이다. 한마디 어수룩한 질문을 하면 청산유수 장광설로 시(詩)적인 대답을 쏟아낸다. 그러는 동안에도 손은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송씨의 아파트 현관문은 늘 열려 있다. 그래서 그 집을 찾는 사람들은 벨을 누르지 않는다. 늘 사람들이 북적대니 따로 문을 잠그고 말 것도 없다. 낮에는 꽃꽂이를 배우는 주부, 폐품을 이용한 수공예품 만드는 사람, 압화(押花)를 배우는 사람,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 이런저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밤엔 대학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이 불쑥 전화를내 "선생님 맥주 한 잔 어떻습니까?" 하고 덤빈다. 물론 송씨는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듯 달려나간다.송씨는 요즘 사회적 직함을 대부분 버렸다. 대신 젊은 시절 배웠거나 스스로 아이디어를 낸 생활공예를 이웃 주부들에게 전수하느라 바쁘다. 그의 손이 닿으면 쓸모 없어 버려진 장기판의 말은 무더운 여름을 견딜 시원한 발이 되고, 냉장고에 볼품 없이 붙어 있던 병따개는 해바라기 꽃으로 피어난다. 비 내리던 날 함양 사리암에서 주워온 도토리는 저고리를 장식할 브로치가되고 버스가 다니는 길가에서 주워온 낙엽은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고운 엽서가 된다.
시간을 정해 차례차례 송씨의 집을 찾는 주부는 대략 하루에 30여명.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이웃 꽃꽂이 회원들까지 '비기(秘技)'를 배우겠노라 찾아온다. 이웃의 대학생들도한가지쯤 특기를 가져보겠노라고 그를 찾는다.송씨의 공예품 제작은 나이든 노인네의 소일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생활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화장술이자 일상의 잡음을 없애는 기름칠이다.춤 솜씨도 일품이다. 맥주춤, 소주춤, 막걸리춤…. 두 다리는 탁 풀어져 휘청휘청, 오른 쪽 어깨엔 벗어젖힌 양복을 척 걸치고 휘적휘적…. 땀흘려 일한 남정네들의 퇴근길 술 한 잔 걸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춤들이다.
'인생은 즐거워'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송영주씨, 23세에 홀로 된 그가 아들 하나를 키워내는 동안 흘려야 했을 눈물의 양은 얼마였을까. 깊이모를 고독과 아픔을 이겨낸 그에게인생은 춤판이고, 쓰고 시린 인생사는 모두 춤사위인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탤런트예요. 행복한 공주역도, 슬프고 아픈 걸인역도, 모두 자신이 연출하고 풀어내는 것이지요. 늘 배우는 마음으로 즐겁게 살겠다고 생각하면 곧 즐거워져요". 미소 가득한 송씨의 얼굴은 마치 '이제 힘을 내 웃어봅시다'하고 유쾌하게 외치는 것 같았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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