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르포-중소도시 의료기반 '휘청'

입력 2001-09-14 00:00:00

취약하게나마 구축됐던 농어촌 및 중소도시 의료 기반을 의약분업이 무너뜨리고 있다. 개업의 의료보험 수가가 좋아진 뒤 개업에 나서는 병원급 근무 의사들이 많고 그 때문에 자리가 빈 대도시 병원들이 중소도시 병원들에서 의사를 선발해 충원하기 때문.

하지만 이런 일은 결국 농어촌 의료 기반 붕괴를 유발, 단순한 사회 현상의 범위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허탈한 병원들=안동병원은 최근 의학전문지에 일반외과 등 6개 진료과 전문의 모집 광고를 냈다. 4명이던 외과 전문의가 1, 2명 부족해졌고 응급실도 이직 등으로 의사가2명이나 충원돼야 할 형편. 소아과도 3명의 의사로는 환자를 다 감당할 수 없어 충원이 필요하다. 병원측은 올 연말쯤엔 개업 파고가 더 거세어져 의사 구인난이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포항에서도 선린.성모.동국대병원과 포항의료원 등에서 올들어 많게는 4~5명까지 의사가 이탈했다. 민간 병원들은 그 뒤 대부분 충원하긴 했지만 일반.흉부외과 등 환자가 많잖은 과는 이 기회에 의사 정원 자체를 줄인 곳도 있다. 특히 포항의료원에선 의사가 4명이나 떠났고, 1명뿐이던 의사가 개업해 버린 비뇨기과 경우 외래환자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입원환자 치료를 위해 외부 의사를 그때그때 초빙해 대처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영천 푸른솔병원에서는 마취.방사선과 의사가 곧 그만 둘 의향을 표시해 후임 구하기에 비상이 걸렸다. 원무계장은 "이들 의사가 없으면 모든 수술이 불가능해 병원 운영 자체가 힘들어진다"고 걱정했다.

경산 경상병원에서도 내과.정형외과 등 4명의 의사가 떠났으며, 김천의료원에도 의사 21명 중 마취.성형.이비인후과 등 의사 3명이 부족해 의사 확보가 원장의 주요 업무가돼 있다.

◇보건소도 맥 못춰=영주에선 성누가병원의 소아과 전문의 및 일반의 2명이 올해 초 개원해 병원측은 곳곳에 광고를 내고 있으나 6개월째 공석이고, 기독병원 역시 3명 이탈로 애를 먹었다. 봉화 해성병원 관계자는 "월급을 도시의 2배 가량이나 주고 사택을 제공하는 등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의사 구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런 사정은 보건소도 마찬가지. 구미보건소 경우 지난 5월 소장이 사직해 시청이 대구.경북 전역의 병원 의사들을 대상으로 공채에 나섰으나 석달 가까이 지원자가 없어 애를 먹었다. 그리고 이 보건소 건강관리과장 자리도 작년 8월 이후 일년이 지나도록 비어 있다.

◇잇따르는 개업=올들어 7월까지 전국에서 새로 개업한 개인의원은 무려 1천800여개. 경산에서도 일년여만에 22개 늘었고, 구미에서는 분업 후 30개 증가했다. 그만큼의 종합병원 의사들이 빠져 나갔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만큼의 농어촌 중소도시 병원급 의사들이 이탈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듯 하다.

구미지역 병원 관계자는 "대부분 4~5년차 의사들이 그동안 모은 돈으로 개업하는 경우가 급증했다"며, "병원들도 고임금 부담 때문에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한 보건소 직원은 "병원들은 고참 의사들이 빠져 나간 자리를 신참 의사들로 채우려 해 결국 지방 병원의 의료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빠져 나간 병원 의사들 중에는 인근에서 개업하는 경우도 적잖아 소속 병원의 환자 유출을 부르는 측면도 있다. 단골 환자를 끌고 나가기 때문. 상주.포항에서그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내팽개쳐지는 농어촌=이렇게 된 뒤에 농어촌 병원들은 의무 복무 공중보건의에 기대는 것이 일반적 추세이다. 영덕 제일병원은 의사 6명 중 4명이 공중보건의이며,영덕병원 9명 중 2명도 마찬가지. 운영난으로 잇따라 주인이 바뀐 군위 유일의 삼성병원도 의료인력 주력을 이들에 의존하고 있다.

열악한 농촌 의료 환경은 의성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이곳에는 ㄱ.ㅈ.ㅇ병원 등 3개 병원이 있으나 의사는 합해야 6명. 이 때문에 소아과.이비인후과.산부인과.피부과.비뇨기과 환자는 멀리 대구.안동.상주 등으로 가야하고, 특히 야간 응급환자들은 안동.대구의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병세가 악화되는 일을 겪고 있다.

인구가 8만명이나 되지만 의성에선 아이를 낳을 산부인과 의원마저 없어 젊은 부부들은 대부분 대구.안동.상주의 종합병원을 이용한다. 이때문에 불만도 많다. 도시민들과똑같은 의료보험료를 납부하고도 의료 환경은 열악하니 당연한 일. 김모(36.여.봉양면 화전리)씨는 "큰 아이는 대구, 작은 아이는 안동의 병원에서 낳았고, 아이들이 커 유치원.초교에 다니지만 아직도 병원은 대구.안동까지 나가야 해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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